소록도와의 인연으로 정형외과를 선택한 저는 의과대학에서 26년 4개월 간 교수로 봉직하였습니다. 정형외과 진료를 기본으로, 학생-전공의 교육수련, 연구 등 일반적인 의대 교수의 생활을 이어오던 저에게 운명적 계기가 옵니다. 2010년 1월, 카리브해의 가난한 나라인 아이티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약 20만 명이 사망하고 30만 명이 부상을 당하는 큰 재난이 일어나자 한국도 구호단 자원 봉사자를 모집했고, 저는 홀리기라도 한 듯 마감 30분 전에 의사협회를 통해 지원했습니다.
진료 첫날, 대퇴부에 고름이 가득 찬 한 젊은 남자가 절망적인 상태로 우리를 찾아왔고, ‘절개 배농’ 치료 후 많이 호전됐습니다. 8일 간의 진료 마지막 날, 그는 저에게 한국에 가지 말고 남아달라고 했습니다.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그는 다시 “그러면 한국 가서 가족 얼굴만 보고 바로 다시 오라.”라고 하였습니다. 실없는 얘기라 웃으며 그곳을 떠났지만 귀국하는 내내 그의 마지막 말과 진심 어린 표정이 제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제가 그들 곁에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의사는 참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도움이 되는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훌륭한 의사들이 많으니 내가 도움 될만한 곳은 아마도 외국이겠지’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그로부터 8년 뒤, 저는 ‘국경없는의사회(MSF)’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1971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로 안전, 생활 및 근무 여건 취약 등 의료진이 가기 꺼려하는 곳, 그렇지만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장 먼저 찾아갑니다. 정치, 종교, 경제적으로 독립 및 중립성을 지키며, 의료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 인도적으로 구호합니다. 루카복음 10장 30절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곤경에 빠진 이웃을 차별 없이 돌보는 박애(博愛)를 현실에서 실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년을 6년 남겨놓은 시점에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 13,44)는 말씀처럼 대학 교수직에서 조기 퇴직 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자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두 차례, 아프리카 오지 에티오피아 감벨라에 한 차례 다녀왔습니다. 아이티 젊은이의 마지막 말, “가족 얼굴만 보고 돌아오라.”에 대해 뒤늦게나마 응답을 한 셈입니다.
아이티에서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외상을 입은 사람들을, 팔레스타인에서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애국 청년들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참혹할 정도로 열악한 의료 환경에 처한 현지인들을 진료하였습니다. 생활 및 진료 여건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의사로 또 따스한 이웃으로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한 시골 소년을 의사로, 교수로, 국제 구호 활동가로 이끌어 주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글ㅣ김용민 베드로(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