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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3-23 09:17:50 조회수 : 614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기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게 만들었던 사건을 성전정화때문이라고 말합니다(마태 11,18; 루카 19,47-48). 하지만 요한복음사가는 성전정화의 장면을 카나의 혼인잔치 내용 바로 뒤에 위치시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죽은 라자로를 살리셨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요한 11,46-57).

 

대제사장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라자로를 살리는 일을 보고 그날부터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실제로 많은 유다인들이 이 사건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요한 12,9-11). 게다가 유다인들은 예수님뿐 아니라 라자로까지 처형할 계획을 세웁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증거까지 없애버려야 뒤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라자로의 부활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원천이며 동시에 생명 그 자체이심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이 부활과 생명이 단순히 내세를 위한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부활과 생명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질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슬픔에 찬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라자로가 내세에서는 생명을 얻어 부활할 것을 믿지만, 현세에서의 생명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슬픔과 아쉬움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라자로를 현실에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당신이 마지막 날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현세의 생명도 허락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지금 여기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새로운 삶의 기쁨을 통해 현실 안에서도 체험되고 있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이 말씀을 듣고 라자로는 마치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양처럼 죽은 몸을 일으켜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요한 10,3). 참된 목자만이 자신의 양을 밖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죽음의 무덤에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실 유일한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마지막 날에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우리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실 구원자이십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죄로 물든 죽은 삶으로부터 부활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허락해 주실 해방자이시기도 합니다. 부활과 생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 안에서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하느님 사랑의 징표입니다.


글ㅣ박현민 베드로 신부(중견사제연수원 영성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