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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 보고 배운 것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3-17 11:35:27 조회수 : 386

저는 19861월부터 14개월간 국립 소록도 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는데, 이 시기 동안 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결정되었습니다. 정형외과를 전공하게 된 것, 지금의 가정이 이뤄진 것 외에도, 멕시코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에서 오신 한조룡 신부님과 벽안의 두 천사 마리안나, 마가레트의 삶을 보며 10년의 냉담을 끝내고 다시 교회로 돌아온 것 등입니다. 지금까지도 관계가 이어지는 소중한 동료들(의사 약사 간호사)도 얻었고요. 저의 첫 책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의 부제가 소록도에서 팔레스타인까지인 것만 보아도 현재에 이르는 과정의 출발점이 소록도였으니 그곳으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이비인후과를 담당하였는데, 주로 하는 일은 늘 염증 상태인 양성(陽性) 환자들의 코를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었지요. 한센병(나병, 문둥병)은 양성 환자의 코점막을 통해 배출된 비말 속 세균(Mycobacterium leprae)을 다른 사람이 코를 통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흡입한 뒤에 감염됨이 밝혀졌는데요, 저도 14개월간 양성 환자의 코 청소를 하였으니 엄청난 양의 균이 저의 코로 들어왔을 테고, ‘확진자를 면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그때, 그리고 이후 37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왜 감염이 안 되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면역력입니다. 정상 면역체계를 갖춘 사람은 나균이 몸에 침투해 들어와도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 소록도 병원에서 근무했던 수많은 의료진, 행정 직원 중 아무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핵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핵균은 호흡기를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한 뒤 여기저기를 돌며 살 곳을 찾아다닙니다. ‘아 저기 좋겠다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아무도 쫓아내지 않으면 그곳에 터를 잡고, 친구도 부르고 자식도 낳으며 정착하게 됩니다. 반대로 가는 곳마다 경찰 등 안전 요원이 순찰을 돌며 쫓아내면 정착을 못 하고 쫓겨나가게 됩니다.

 

우리 몸에서는 백혈구를 중심으로 한 면역 세포와 면역 물질들이 온몸을 순찰하고 있지요. 이러한 선천 혹은 내재 면역력(innate immunity)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하느님이 주신 감사한 선물입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마르 7,15, 마태 15,11).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다(마태 10,30).

 

이제는 두려움과 걱정을 벗고, 제가 소록도에서 보고 배운 것, 즉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것들에 감사하며, 서로 돕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나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ㅣ김용민 베드로(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