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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향기 진한 영천 성당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3-17 11:35:01 조회수 : 434

오래된 건축물에서는 묵은 향기가 납니다. 오래되어 낡았지만 정성 들여 고이 닦아 보존한 건축물이 풍기는 깊이와 향기가 다릅니다. 세상은 낡은 것들을 새것으로 교체하기 바쁘지만, 영천 성당은 한 차례 증축작업을 거쳤을 뿐 대부분 1936년에 지어진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성당은 아니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성당입니다.

 

오랜만에 맞는 화창한 주말. 하늘엔 얇은 구름만 간간이 떠 있고 햇살은 따스했습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영천 성당의 밝고 화사한 베이지색 외벽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성당의 모습은 지중해의 건축물과 닮아 이국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천 성당의 역사는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1870년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형성된 천주교 신앙촌이 그 모태입니다. 이후 영천지역 여러 곳에 공소가 건립되고 일제 강점기에 영천 성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프루아드보 레이몬드 신부님이 스위스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건립 기금을 기부받아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3610월 성당을 완공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의 천주교 박해가 심했다는 얘기에 가슴이 숙연해졌습니다. 이 땅의 성당들이 어디나 그렇듯 신자들의 진한 피와 깊은 신앙심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가슴을 눌러왔습니다.

 

초대 주임인 프루아드보 레이몬드 신부님은 스위스 태생으로 25살인 19339월 파리를 떠나 113일 대구에 도착, 1936년에 영천 본당의 주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태생도 신비롭지만, 이역만리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땅에서 사제의 삶을 시작한 이방인 신부의 희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 32). 이 말씀은 성당 순례를 다니면서 늘 마음속에 떠올리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사진ㅣ이선규(예비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