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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물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3-10 09:24:54 조회수 : 393

우리가 살아가는데 물은 생명에 꼭 필요한 필수 요소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을 잘 마시지 않습니다. 워낙 물 마시는 것을 싫어해서 어떤 날은 물 한 잔도 안 마시곤 합니다.

 

철원에서 군 생활할 때 사단 RCT 훈련을 마치고 수십 킬로를 행군해서 부대로 귀환하는데, 컨디션 조절을 잘 못 했는지 행군이 정말 지옥처럼 느껴졌습니다. 워낙 행군을 많이 하는 부대였기에 평소엔 힘들어도 잘 참아냈는데, 그날 밤 행군 길은 탈수 현상까지 생겨 아직 갈 길은 10km 이상 남았는데 점점 눈이 흐려졌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허리춤에 달린 빈 수통이 덜렁덜렁 대는데 버릇처럼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빈 수통을 계속 입에 털면서 버틸 수 없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앞으로 푹 엎어지면서 기절했고, 제 군 생활 중 처음으로 낙오를 체험했습니다. 소리치는 외침들이 어스름하게 들리고 무전을 치는 소리 등의무병이 쓰러진 저를 일으켜 부축해 의무대 지프차에 태우는데 의식이 없다 보니 짧게 짧게 기억이 났습니다. 의무대 차량 뒷자리에 누운 채로 의무병이 수통의 물을 주는데 그렇게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수통을 가로채듯이 빼앗아 그 많은 양의 물을 벌컥벌컥 순식간에 다 마셨습니다. 의무병이 아저씨! 이제 의식이 좀 들어요? 물 좀 더 줄까요?” 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 제발 물 좀 더 주세요.” 하고는 두 번째 수통의 물까지 단번에 다 마셨습니다. 그날 마신 수통의 물 두 통이 지금껏 제가 마셔본 물 중에 최고 생명의 물이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오고 탈수 현상이 사라지자 제 눈을 살피던 의무병이 장교에게 보고하고 제가 속한 중대의 무리에 내려주었습니다. 정신이 들고 나니 중대원들 무리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놀랍게도 두 통의 물에 제 체력은 신기하게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영적 갈증을 대번에 알아보셨습니다. 슬프고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그 사마리아 여인은 가까이 마음을 털어놓고 위안을 청할 사람도 없이 삶의 의미를 전혀 찾지 못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의 샘물이 되어주십니다. 저에게 수통 두 병을 연민으로 전해주어 그날 밤, 저를 살려준 그 의무병처럼 예수님은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살려주시는 부활의 생명수를 여인에게 건네주시고 희망 없던 그녀의 삶은 기쁨으로 바뀌고 부활을 체험하고 늘 멀리하며 피했던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 생명의 주님을 만났다고 외칩니다.

 

이 거룩한 사순 시기, 우리는 우리 육신의 물만 찾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생명수를 목말라 해야 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4) 주님의 말씀에 사마리아 여인처럼 주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큰소리로 외치는 사순 시기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글ㅣ한영기 바오로 신부(성라자로 마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