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것이 참 두려웠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칭얼대는 저를 집에서 재우고 난 후 성당에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잠에서 깬 저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성당까지 30분이 넘는 거리를 울면서 달려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린 제가 그토록 추운 겨울날 눈길을 헤치며 달려왔다는 것에 너무 놀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 홀로 남겨져 있는 것보다 그 먼 거리를 달려오는 것이 더 위험한 상황인데, 어린 저에게는 부모님의 부재가 더 두렵게 느껴졌었나 봅니다.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느님께서 이르시는 낯선 곳을 향해 떠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람1) 은 두렵지 않았을까요? 물론 당시의 저처럼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일흔다섯이나 된 연로한 나이에, 알지도 못하는 땅을 향해 떠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처음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떠난 행위 자체가 믿음의 행위입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창세 15,6)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은 두렵고 떨렸지만,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죽음을 각오하고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때때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우리가 원하는 모습, 영광스러운 순간에만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끝나갈 때 제자들처럼 두려워 떨기도 하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7,7). 예수님께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영광 안에 머무르실 수도 있었지만, 우리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같은 모습입니다. 복음 때문에 수인이 된 그는 오히려 티모테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라.”(2티모 1,8)고 말하지요. 그리고 이어서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살도록 은총으로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 오늘 말씀들을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믿으며 두려움을 떨쳐내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글ㅣ김시몬 요한 사도 신부(팽성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