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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공감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1-27 09:34:02 조회수 : 433

간혹 간호사들이 저를 부를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환자 혈관을 잡을 수 없으니 도와 달라는 청입니다. 보통은 왼쪽 두 번째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혈관을 잘 찾아서 바늘을 넣을 수 있지만 유독 혈관이 없는 분들은 손끝 감각으로 혈관을 찾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초음파로 혈관을 보고 주삿바늘을 넣는 것이 저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이 되었기에 한 번에 혈관을 잡을 수 있어 이런 부탁을 간혹 받게 됩니다. 그럴 때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와 병동 간호사들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의대생일 때 위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진행이 되었던 암이었습니다. 수술하시고 장폐색이 와서 몇 번 더 수술을 견뎌내셔야만 하셨습니다. 왜소하셨던 어머니는 입원할 때마다 혈관을 잡을 수 없어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병동에 유능하다는 간호사 두세 명이 붙어서 혈관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시도해야만 했습니다. 몇 번을 시도한 후에 겨우 혈관을 잡고서 간호사가 여러 번 아프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면 어머니는 아유~ 없는 혈관 잡아줘서 고마워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마 그런 어머니의 말씀에 간호사들은 작은 감동을 받았나 봅니다. 두세 해 여러 번 입·퇴원을 반복하던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에 복막 감염으로 패혈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컸던 문제는 피가 부족한 것이었는데 하필 그날이 연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수혈할 수 있는 상황이 어려웠습니다. 더불어 어머니는 피가 O형이었는데 자식들은 모두 A형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 사시던 이모님이 어머니를 위해 피를 뽑아 수혈하셨고,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간호사 한 명이 수혈을 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두 분의 피를 받고 하늘나라 하느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모님이야 같은 자매니까 그렇다 해도, 그 간호사는 어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장례식을 치른 후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우리가 혈관을 잡으려고 그렇게 많이 찔렀는데도 아프다고 말씀 한 번 안 하시고 오히려 없는 혈관 잡아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신 것이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선뜻 수혈해주고 싶었습니다.” 간호사의 수고로움과 어머니의 아픔을 서로 공감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혈관이 없는 환자들은 늘 누워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혈관이 없어 죄송해요.” 저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 번 아프지 않게 한 방에 해드려 볼게요.” 바늘 찔림의 고통을, 수고로운 실패에 대한 미안함을,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그 마음을, 진료실로 들어오는 지금의 환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눠보려 합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