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촉증명서를 떼어주세요!
연말이면 어김없이 저희 연구소로 “해촉증명서를 떼어주세요.”라는 연락이 오곤 합니다. 한두 차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나 번역가 같은 분들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복지제도’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수입이 발생했다면 그 수입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다음 해 건강보험료, 국민연금이 높게 책정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이후 일감이 끊긴 ‘프리랜서’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수입이 줄었으니 보험료를 낮춰 달라고 하면, 이전에 급여를 지급한 곳에서 ‘해촉당했다.’라는 사실을 증명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을 해주고, 원고를 써주고, 번역과 통역을 해준 수십 곳의 일터에 직접 연락을 해서, 해촉증명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답니다. 여간 번거롭고 구차한 일이 아니지요.
저는 사실 그분들을 ‘해촉’한 적이 없습니다. 너무나 훌륭하게 일을 잘 하셨고, 다음에 꼭 다시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늘 일거리를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저희처럼 작은 단체나 중소기업들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한 일터에 소속되어 안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나, 사람을 많이 고용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고민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작은 일터와 불안정한 프리랜서들에게 너무 야박한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 ‘가난’의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밥을 굶어야만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불안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밀려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갑자기 수입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복지혜택을 받으려 증빙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부자들은 자신을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벌이 좋으면 졸업장으로, 직장이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면 명함으로, 의사나 변호사라면 자격증으로, 잘 사는 동네에 집을 갖고 있다면 주소만으로도 자신의 능력이 입증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좋고 성실해도, 학벌도, 이름난 직장도, 비싼 아파트도 갖지 못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입증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회는 부유해졌는데 가난한 사람은 더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은 죄지은 인간을 해촉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모든 사람을 존엄한 인간으로 위촉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서로를 해촉하도록 만들며 끊임없이 새로운 가난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건 없는 복지를 더 늘려 새로운 가난을 막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요?
이원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LAB2050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