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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죽음과 슬퍼할 권리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11-24 14:05:11 조회수 : 555

어느 새 11월 위령 성월의 끄트머리에 와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비롯해 형제, 친척, 친구, 은인들을 기억하며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 성월인데요. 저는 언젠가부터 미사 때마다 신부님께서 미사 지향을 읽으실 때면 마음속으로 제 개인 지향을 추가합니다. 대세의 은총 속에 세상을 떠나신 친정아버지와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시절의 저를 키워주신 외할머니 그리고 부제품을 6개월 앞두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성당 후배와 2년 정도의 짧은 봉사활동을 통해 매주 만났던 두 안나 할머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연옥 영혼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 드린다는 지향이죠. 물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그분들이 천국 복락을 누리고 계시다면 통공의 신비 안에서 기도가 필요한 다른 연옥 영혼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향할 거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11월 위령 성월을 마무리하며 저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죽음과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살아서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을 떠나서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영혼이 될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이지요.

20142, 마지막 집세와 함께 밀린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죽음을 택했던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망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고 그러면서 송파 세 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안’,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안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그 이듬해 관련법이 시행에 들어간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1911월 서울 성북구 네 모녀 사망 사건, 202012월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8월 수원 권선구 세 모녀 사망 사건까지, 송파 세 모녀법은 이들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정부 차원의 복지 사각지대 보완이나 복지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겠습니다만,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대응입니다. 이른바 무연고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죽음. 가족이나 친인척마저 시신 인수를 포기해 살았을 때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무연고였던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는 누군가가 그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으며, 굳이 혈연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관계, 연을 맺으며 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하고 헤어질 준비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201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법적 권리는 혈연 연고자 즉 부모나 형제자매가 아니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조카나 이모, 삼촌 등은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조차 없다는 거죠. 현실적으로 떨어져 사는 혈연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연락두절한 채 살다가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으로 연락을 받으면 그의 장례를 떠맡을 유가족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결국, 혈연 연고자가 연락이 닿지 않거나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가 되고 표현조차 민망한 보건위생상의 이유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2020년부터 보건복지부의 지침 변경으로 사실혼 관계 배우자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바꿨다고 하네요. 하지만 비혼 가구, 1인 가구 비율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의 30%를 넘는 현실에서 혈연과 가족 중심의 장례 권리와 의무는 분명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일 겁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필요한 것이 바로 공영장례입니다. 무연고자나 저소득층 사망자를 위해 우리 사회가 지원하는 장례의식이죠. 사망 후 장례절차 뿐만 아니라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고인의 애도 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도록 공공이 빈소를 마련하고 추모의식 및 장례의식을 지원하는 사회적 장례지원제도를 말합니다. 이런 사회적 장례지원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단체, ()나눔과나눔은 사회보장적 차원에서 죽음과 장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돈이 없는 이에겐 국가가 무상으로 의료를 지원하는데 무상장례라는 말은 아직 낯선 개념이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사회보장적 차원에서 공영장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현재 공영장례 조례를 도입한 곳은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에선 11,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에선 50여 곳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경기도의 경우, 31개 시·군 중에서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 지원조례를 둔 기초자치단체는 수원과 광명, 하남과 고양, 이천시 등 13곳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하고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수원시의 경우 지난해 7, 천주교 수원교구를 비롯해 수원시 기독교연합회와 불교연합회, 원불교 경인교구 등과 공영장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2016,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죽은 이의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훈령,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긴 하지만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주신 새로운 육신과 우리의 영혼이 결합해 영광스럽게 부활할 거라는 믿음을 담고 있지요. 비록 그들의 힘들었던 삶을 세상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지켜주지도, 함께 짊어주지도 못했지만 무연고자로 불리며 떠나는 마지막 길만이라도 진정한 애도로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영혼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맡겨 드리며 마음 다해 위령기도를 바칠 수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 무엇보다 잘 먹고 잘사는 웰빙을 고민하던 시대를 지나 이젠 나뿐만 아니라 이웃의 고결한 죽음, 웰다잉까지 우리 교회와 사회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글ㅣ이지혜 체칠리아(대구cpbc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