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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남기고 간 것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11-16 09:25:46 조회수 : 456

바닷가 마을에 살아 서핑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제 아들 또래였던 그 아이가 어느 날 해초 더미에 걸려 익사 직전에 구조되었다는 지역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 출근해보니, 서핑을 하다 구조된 아이는 제가 맡아야 할 환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너무 늦게 구조돼 상태가 점점 나빠졌고, 결국 뇌사판정을 받았습니다. 간호사였던 저는 아이 엄마에게 너무나 힘든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혹시, 아이의 장기를 기증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건 어쩌면 아이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서 더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도 덧붙여야 했습니다. 아이 엄마는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본 채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리를 비켜주었고, 엄마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긴 설명이나 장기 기증에 대한 장황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저는 아이 엄마에게 장기이식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의 현실과 이식을 해주는 방법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손을 마주 잡았을 때 차가웠던 엄마의 손에 조금씩 온기가 돌았고, 제 말을 듣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아이의 몸에서 아이를 지켜주던 장기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적출되고 있었습니다. 심장과 신장, 간과 소장, 피부와 각막, 뼈와 골수를 내어준 아이. 각각의 장기들은 기증을 기다리던 환자들에게 또 다른 생명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장기이식 세미나에서 그 아이가 선물해 준 장기이식을 도왔던 코디네이터를 만났습니다. 아이 엄마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통해 살아있을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에 묻고 있던 아들에 대한 아픔이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했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력으로 마지막 주일인 오늘,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며 나눔을 실천하는 나’, ‘아낌없이 주고 떠나는 우리가 되고 싶습니다. 저 역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작에 장기 기증에 싸인을 해 두었습니다. 누구에게 작은 희망이 되고, 나눔을 실천하는 나와, 우리가 된다면 주님 보시기에 더 없이 좋지 않을까요?


 글ㅣ전지은 글라라(그래도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