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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과 죽음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10-20 16:59:01 조회수 : 857

2018124, 미국 디트로이트에 살았던 열여덟 살 대학생 메이슨이 자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열적이고 다정하고 성실했던 아름다운 청년 메이슨이 자살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메이슨의 장례식에서 그의 슬픈 죽음보다 짧지만 빛났던 삶을 기억하고 그가 떠나는 길을 축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장례 미사를 집전할 신부님을 만나 강론 중에 자살을 언급하지 말고 그의 죽음보다는 삶을 강조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장례 미사 강론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아래는 강론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나쁜 것을 선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른 것을 옳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하느님과 우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대적하는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A priest condemned suicide while speaking at a teen's funeral.” CNN, 20181120).

 

만약 신부님이 교리를 문자 그대로 전달하기에 앞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고 보듬었다면 어땠을까요?

교회는 자살을 대죄로 간주합니다. 비록 장례미사를 금지하는 이들의 목록에 자살자를 포함시켰던 교회법이 바뀌어 장례미사와 연미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게 되었고 (1983년 법전), 자살을 창조주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행위로 간주했던 과거에 비해 표현 방식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여전히 자살이 죄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인간은 생명의 관리자일 뿐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생명 또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고,” “저마다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생명에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2280).

 

그러나 자살을 로 표현하는 교리서의 조항이 자살자를 단죄하는 관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죄론은 심판과 징벌을 통해 죄를 해소하는 규범구조를 갖고 있는 형법의 규범체계와 다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가 죄이고, 따라서 은총을 통한 용서와 관계 회복을 통해 죄가 해소됩니다. 판단과 정죄보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된 상황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지요. 교회에서 자살을 로 규정하는 것은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예방과 보호에 힘쓰고자 함이지 자살자를 죄인으로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자살이 항상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문제일지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승자 독식의 경쟁 지상주의 사회에서 극심한 빈곤에 내몰려 결국 삶을 마감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암과 희귀병, 갈수록 불어가는 빚에 시달리다 결국 숨을 끊은 바로 얼마 전 수원 세 모녀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자살이 과연 선택이었을까요? 밀린 집세를 유서와 함께 남긴 그들, 장례를 맡아 줄 이도 없어 무연고자로 처리된 쓸쓸한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수원교구에서는 두 분의 신부님이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연령회 회원들과 기도로 함께했습니다. 이렇듯 자살자들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도록 이끌고, 상처 받은 이들을 보호하고 위로하여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 사목자의 본분입니다.

 

자살은 양극화와 분배 불평등 등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하는 사회적 문제이며, 돌봄의 사각지대와 정신건강의 문제를 경시하는 풍조에서 발생하는 공중 보건의 문제입니다. 교회는 선택지를 찾기 힘든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이들과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짓눌려 심각한 정신건강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또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와 비판에 빠져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하느님의 요청을 따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풍조도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살을 선택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사망한 사람 뿐 아니라 유가족에게도 낙인이 되며, 그들의 죽음을 방조한 사회적 책임 또한 간과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2022720, 나종호 교수 인터뷰 중에서).

 

메이슨의 장례식에서 발생한 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무엇이 우선 되어야하는 가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은 어느 경우에 있어서든 사랑과 용서를 강조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한 인간을 그토록 절망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은 이유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글ㅣ조민아 마리아(조지타운 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