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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물들어가는 시간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10-20 16:57:49 조회수 : 491

밤 줍기도 이제 다 끝나고, 들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서늘함이 산자락에 드리웠습니다. 가을이면 으레 잎이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날이 추워지니 견디다 못해 떨어지려니 생각하는데, 사실 나뭇잎은 겨울을 나게 될 나무를 위해 잎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뿌리로 보내고 자신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큰 몸을 지탱하기 위해 꽁꽁 얼게 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온 힘을 다해 흙을 붙잡는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겨우내 우리 눈에는 마른 장작처럼 보이는 어떤 나무도 땅속 깊은 데에서는 대지를 껴안는 이 큰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십여 년째 흙에서 살다 보니 얼굴에 기미가 가득하고, 검게 익은 피부는 해를 보지 않아도 검기만 합니다. 모처럼 만에 휴가를 가니 어머니의 한숨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딸 다섯 중에 막내가 가장 주름도 많고 얼굴에 기미도 많다고 걱정이 산 같으십니다. 그런 어머니께 저는 엄마, 저는요, 마더 테레사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맙소사. 왜 그렇게 어렵게 살려고 그려. 그냥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는 거여?”라고 되물으셨습니다.

 

수녀님들은 제 얼굴을 보며, “햇님이 입 맞추고 갔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얼굴에 태양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제 손에 풀의 흔적이, 손톱 밑에 흙의 흔적이 있을 때도 행복해집니다. 그들에게 내어주는 저의 손과 발, 제 마음에 그들의 흔적이 남겨집니다. 물이 드는 것이지요. 자연을 돌보는 우리는 서서히 자연에 물이 들어갑니다. 땅과 일치되는 호흡 안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모든 것이 어머니의 젖줄처럼 다가옵니다. 저를 살게 하는, 우리를 살게 하는 이 내어줌의 원리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 안에 하느님께서 내어주신 사랑의 자취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글ㅣ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노틀담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