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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창조 시기(Season of Creation)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10-07 10:09:50 조회수 : 577

91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시작으로 10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까지 5주간 이어진 창조시기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올해 창조 시기의 주제는 피조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였는데요. 이 땅의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울부짖는지 혹시 들으셨나요?

 

벌써 20여 년이 훌쩍 넘은 이야깁니다만, 성당 동기였던 친구가 서른 살이 넘어 신부님이 되겠다며 신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입니다. 성당 친구들과 일일 바다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요. 그 친구가 바닷가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뭐하냐고 했더니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속에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아이고, 역시 신부님 될 사람은 다르네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했지요. 물론 그 친구는 늦깎이 신부가 되어 지금까지 사제로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제가 그 개 풀 뜯어 먹는 체험을 종종 하고 있더라고요. 바닷가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볼 때, 이른 새벽 호수를 가득 채운 물안개를 바라볼 때 그리고 세상의 소음이 모두 사라진 숲속 캠핑장에서 풀벌레 소리와 함께 캄캄한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볼 때, 그렇게 문득문득 그 친구의 말이 떠올랐던 거죠. 그 모든 곳에서 그래, 지금 나 여기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말 그대로 무소부재(無所不在)의 하느님 현존을 체험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 때의 감동을 2022 창조 시기 안내서에서 이렇게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같이 사는 피조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인간 친구나 가족과 살면서 진실과 선함 또는 아름다움을 깨닫는 일과 같습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 삼위일체를 알게 되고, 삼위일체 안에서 피조물은 살아있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 1,26).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피조물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잘 가꾸고 보호하는 건 이미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모상 그대로 창조된 최고의 피조물,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책무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피조물을 가꾸고 보호하기 위해선 그들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지 듣는 것이 먼저일 테지요. 하지만 시편 저자의 말대로 피조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경청이 필요한데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목소리 큰 사람에게 온통 시선과 관심이 집중돼 낮은 소리, 작은 소리를 경청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건 오로지 나의 자발적인 침묵, 그 침묵을 통해 전해져 오는 피조물과의 내적 대화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겠죠. 가만히 눈을 감고 바다의 파도 소리, 바람 소리에 집중하며 삼위일체의 신비 속으로 빠져들었던 그 친구처럼 말이죠.

 

5주간의 창조 시기 동안, 본당마다 미사 전후로 창조 시기 기도문을 바치고 관련 담화문도 읽으면서 그렇게 창조 시기에 대한 공감대를 높이려 노력했습니다. 또 전국 교구의 사제와 수도자들, 교회 내 생태환경운동가들 그리고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교우들은 곳곳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피켓을 들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치며 응답하는 삶을 살자고 촉구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정작 생태환경정책의 일환으로 다뤄지는 에너지 정책은 우리의 자녀,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지향적, 전 지구적 차원의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맞춰 너무 쉽게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면서 이념적 논쟁거리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탈원전 정책이죠.

 

창조 시기가 시작되기 직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일본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가 공동으로 ‘2022 한일탈핵평화순례를 가진 바 있습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인 박현동 아빠스는 세계적으로 전쟁과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고 기후위기 등으로 피조물의 고통이 날로 커지며 환경과 에너지 정책에도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관련된 정책들이 지난날의 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공동순례단은 핵 발전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것으로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오만일 뿐이라고 일갈하기도 했죠. 하지만 낮은 곳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는 목소리여서일까요?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식 선포했습니다. 이미 운영 허가가 만료된 핵발전소의 계속적인 운영을 허용하는가 하면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2030년엔 원전 비중을 23.9%에서 32.8%로 확대할 계획이라고까지 밝혔습니다. 여기에 감사원이 국정감사에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사업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사업까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고 말하면서 정치적으로는 표적감사 논란이, 정책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계획마저 먹구름이 낀 상황인 거죠.

 

2022 창조 시기는 이미 끝났지만 생명과 평화로 가는 탈핵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창조 시기는 아직 끝나지도, 끝낼 수도 없습니다.

 

이 거룩한 땅을 조심스럽게 걷는 법을 배우는 저희를 주님의 은총으로 비추시어, 저희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우리 공동의 집을 지켜주시는 주님의 치유하시는 사랑의 빛으로 불의의 불길을 끌 희망을 저희에게 주소서. 아멘(2022 창조 시기 기도문 중에서)


 글ㅣ이지혜 체칠리아(라디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