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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벌레를 잡으며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9-23 10:50:20 조회수 : 467

김장배추밭에서 배춧잎 사이사이를 보며 배추벌레를 잡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제 어린잎들이 배춧속을 만들기 위해 잎을 오므리고 있어서 상처를 만들 수 있으므로 벌레 잡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집 배추는 벌써 보기 좋게 여물어 김장배추의 꼴을 갖춰가고 있는데, 저희 밭 배추는 크기며 빛깔이 아직 멀어 보이고, 심지어는 폭격을 당한 듯 구멍 난 것이 가엾어 보였습니다. 그러니 주인은 안쓰러워서라도 배추밭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 잎, 한 잎을 젖혀가며 벌레의 행방을 찾는데, 벌레는 때때로 보호색으로 무장해 눈속임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보호색으로 눈가림을 해도 배춧잎에 벌레 똥이 보이면 그 배추에는 분명히 벌레가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우리 수녀님들은 배추밭 응급실에서 수술 중이라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초보 농부 수녀님도 처음에는 벌레를 보며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손으로 잡아 벌레 통에 넣습니다. 아니 한술 더 떠서 , 이 벌레는 정~말 예뻐요.”라고 말하며 잡지요.

이렇게 가을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배추벌레를 잡으며, 문득 저 자신을 의식하곤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남들 가는 방향과 속도에 따라서 무작정 달려가는 그 속도가 여기 이 자리에서는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람 부는 날에 우리 산기슭으로 놀러 나오는 매처럼, 바람을 거슬러 날아올라 오히려 바람을 마주하는 그 모습과 같습니다. 다른 모든 새는 정말 똑똑하게 바람 가는 그 길을 택하는데, 매는 바람 부는 날 역풍을 즐기러 이 산으로 놀러 오기 때문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매의 비상을 보고 있자면, 다만 배추벌레를 잡는 이 일이 시류에 휩쓸릴 수 있는 바람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배추를 재배하기 위해, 편리함을 위해 살충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배추벌레를 잡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배추벌레를 잡으며.


글ㅣ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노틀담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