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같은 여름철 무더위가 사람들의 진을 쏘옥 빼놓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에 괜한 짜증도 나기 쉬운 듯합니다. 생존본능인건지 열을 식히고자 어느새 시원한 장소와 음료를 찾느라 분주한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름 무더위가 하루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올여름 무덥고 해가 강하기에 더 잘 자랄 수 있는 농촌의 농작물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조금 힘들게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될 더위의 의미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편했던 생각과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습니다.
전래동화에서 우산 파는 아들과 부채 파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늘 걱정과 염려로 삶을 마주하게 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다가가면 캄캄하던 앞날이 한 줄기 빛으로 비춰지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삶의 매 순간 가운데 꼭 단순하게 표면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부정적이라 생각된다고 하여 외면하는 게 꼭 능사는 아닌 듯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이 같은 딜레마 상황은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자주 불편하게 대두되었던 문제 같습니다. 특히나 관계의 상황 속에서 더더욱 사람들을 경직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용감히 나설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태의연한 가이드 라인 안에서 손해 보지 않고 살 것인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 선택 이후 맞닥뜨릴 부정적 그림자에 겁을 먹고 불편한 타협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복음 속 예수님은 그들이 스스로 불편해하던 진실과 마주하길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루카12,49-52).
복음이 말하는 평화는 늘 안온한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삶과 사람을 진실되이 마주할 수 있길 기도하며 한 주간 힘을 내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글ㅣ박유현 빈첸시오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