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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의 정치 상황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8-12 09:35:27 조회수 : 656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던 당시 팔레스티나는 기원전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침략하면서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곳곳에 원활한 교역과 교통을 보장하기 위해서 당시 사마리아와 같은 곳에서 일어났던 제국 내의 골칫거리인 해적과 강도 행위를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이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을 최소화하면서 누렸던 로마의 평화(Pax Romana, 기원후 1-2세기경)시기에는 제국의 여러 도시에서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은 평화롭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6세기 동안에 걸쳐 이민족 제국(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의 지배 아래 있었던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무렵의 로마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였고, 예수님은 팔레스티나 남쪽에 있는 이두매아 출신 헤로데 임금 때 태어났습니다(마태 2,1; 루카 1,5 참조). 처음에 로마제국은 헤로데 임금 통치 아래 유다인들의 자치 형태와 유사한 체제를 허용하였습니다. 그는 임금이 되기 위해 자기 가족까지 살해할 정도로 피에 굶주린 통치자였지만, 정치적 지략은 뛰어나 당시 팔레스티나는 겉으로나마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번창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환심을 얻기 위해 팔레스티나 전역에 걸쳐 아름다운 건축들과 심지어 이교 신전을 세우고 황제 숭배 사상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다인들은 그를 이교도이자 이민족 통치자로 여기며 증오하였습니다.

 

헤로데 임금이 죽은 뒤(기원전 4)로마는 팔레스티나 지역을 헤로데의 세 아들 아르켈라오스와 헤로데 안티파스, 필리포스에게 임금이 아닌 영주로서 땅을 나눠 다스리게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기에 갈릴래아를 다스리던 사람은 바로 헤로데 안티파스였습니다(마태 14,1-12; 마르 6,14-29; 루카 3,1-20; 23,7-15 참조). 한편으로 유다인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던 아르켈라오스는 십 년도 못 되어 로마에서 쫓겨났고, 필리포스는 기원후 34년에 죽었으며, 헤로데 안티파스도 39년에 파면당하였습니다. 대신에 로마는 이 지역에 로마 총독을 임명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재판과 죽음에 관련된 대표적인 로마 총독은 본시오 빌라도(기원후 26-36년 재임)였습니다. 당시 로마 총독의 권한은 막강했습니다. 로마 총독의 주요 임무는 세금 징수, 유다교 대사제에 대한 임면권 행사, 유다 법정에서 이루어진 사형선고에 대한 승인이나 거부 그리고 관할지역 상황과 정세를 로마제국에 보고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팔레스티나가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어서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한편 로마는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종교 관습을 지키는 데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유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정치와 사회 상황에 놓여 있던 모든 유다인들은 로마의 가혹한 지배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 즉 정치적·물리적 권세를 지닌 인물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글ㅣ이승환 루카 신부(교구 복음화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