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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하느님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7-29 09:39:48 조회수 : 483

저희 아버지께서는 늦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가족이 다 성당에 가도 아버지께서는 착하게만 살면 된다고 하시며, 신앙생활 하는 것을 어려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첫 서원을 하고 본가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볏섬이 쌓인 창고로 저를 부르시고는 평생을 고이고이 묻어두셨던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어머니께서 나를 부처님께 봉헌하셨어. 그래서 만약 내가 성당에 가면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네가 이렇게 수녀가 되고, 서원도 하니까 내 마음이 달라지더라. 주일날 미사 시간마다 혼자 남아 있을 때, “너희 아버지만 안 왔구나.” 하는 소리가 자꾸 들리는 거여. 그래서 가끔 너희 엄마 따라서 성당에 가봤는데, 기도도 할 줄 몰라서 맨 뒷자리에 앉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 “주님, 여기 죄인이 왔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게 맞는거여?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예를 들어 가르쳐 주셨던 세리의 기도를 이미 하고 계셨습니다. 이후 아버지께서는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새벽 네 시가 되면 일어나셔서 기도 상에 촛불을 켜고 두 손을 모으셨습니다. 방문 사이로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올 때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제 마음속 깊은 데에 새겨져 이제 제 자신처럼 다가옵니다.

 

이제 구순(九旬)을 넘어 망백(望百)이 되신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앉아서 기도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기름을 끝까지 다 태우기 위해 기울일 때의 등잔처럼, 아버지는 자신의 온몸과 마음을 기울여 끝까지 태우고 계십니다.

 

제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를 시작하면,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함께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저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축복할 때처럼, 일평생 땅을 섬기며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을 제가 상속받는 느낌입니다. 이 땅과 함께, 제 아버지의 하느님이시자 저의 하느님이신 분께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글ㅣ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노틀담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