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헤아릴 때 이룰 수 있는 성가정
혼인강좌를 담당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적게는 40여 쌍, 많게는 70여 쌍이 모이는데 혼인을 앞둔 청춘들이라 그런지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하트가 뿅뿅~~ 나옵니다. 저는 그런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자이고 또 반은 여자인데 왜 이 남자, 이 여자를 배우자로 선택했나요?” 그러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쁘고, 잘생겼는데 자상한 마음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같이 있으면 너무 편하고 행복합니다.” “제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 줍니다.”
그럼 이렇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나 서로가 부부의 연(緣)을 맺고 살아가려고 할 때 오직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만남이 이루어졌을까요? 분명 ‘나와 너’가 사랑해서 만난 사이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개입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통해 만난 인연이기에 신앙인들은 예수, 마리아, 요셉이 보여준 성가정을 이루고자 노력합니다. 그럼 왜 우리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할까요? ‘성가정’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우리는 막연하게 행복하고 이상적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이 이룬 가정은 그저 평안하기만 했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통과 시련을 견디고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주며, 힘을 더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임무에 충실하며 성가정을 돌보았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보살피는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겸손한 하느님의 종이자 정결한 남편이었으며 성실한 아버지였습니다. 마리아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린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합당하게 자랄 수 있게끔 키웠고, 마지막에는 가장 먼저 아파하셨으며, 혈연적인 관계를 떠나 교회의 어머니로 불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성 안에서는 부모의 아들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고, 신성으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구원을 위한 구원자의 모습으로 순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모든 가정 안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며 순종하는 자세로 걸어갈 때 하느님은 또 적절하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것이고 우리도 예수, 마리아, 요셉이 보여준 성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성탄 팔일 축제의 한가운데 있는 성가정 축일에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늘 함께하길 바랍니다.
김진우 베드로 신부(제1대리구 복음화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