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사회적인 직분은 실용음악과에서 작곡과 편곡, 연주를 가르치는 교수인데 교회 내에서의 직분은 참 다양합니다. 생활 성가 가수이자 음악 피정 인도자,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방송인, 청년성가대 지휘자입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갓등중창단 활동으로 처음 생활 성가계에 발을 내디뎠고, 이노주사에 몸담으면서 찬양 사도로서 마음을 품기 시작했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발매한 개인 앨범 ‘Confession’을 통해, 부족하지만 제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음악적인 달란트를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기 위해 사용하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생활 성가계에 오래 몸담았다는 이유로 벌써 원로 대우도 받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찬양의 중요성을 깨닫고 평생 찬양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특별한 사건과 강렬한 체험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30년을 넘게 생활 성가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엎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시나브로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이노주사’라는 찬양팀에서 활동하면서, 늘 저 자신이 찬양하기에 참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 제 앞에는 골리앗급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득했고, 그 일들을 가까스로 처리하면서 찬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늘 부족해서 부끄러웠던 공연도 많았고,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찬양을 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모으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찬양을 하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급하게 앨범을 준비하면서 마음과 정성을 담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만든 찬양곡도 있었습니다. 그 곡은 생활 성가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많이 알려진 ‘아버지’라는 곡입니다. 저는 도망치듯 유학을 떠났고, 그 이후에 이노주사 지도신부님과 후배들이 전국으로 다니면서 열심히 찬양 선교를 했습니다. 저의 부족했던 마음, 정성, 기도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찬양했던 후배들에 의해 채워졌고, 제 곡을 들으시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위로를 느끼셨던 신자분들에 의해 채워졌고, 교회로 인해 가득 채워졌습니다.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저는 각종 전례 때 오르간 반주를 해야 했습니다. 모든 신학생이 기쁘게 찬양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좀 심통이 났습니다. 반주 때문에 나만 전례에 깊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나만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배는 ‘너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봉헌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면서 저의 마음을 다독여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특별한 소임에 대한 자긍심도 생겼고, 기쁘게 반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마음과 정성을 담은 반주는 신학생들의 열정 가득한 찬양으로 채워졌고, 그때 받은 감동 때문에 건반에 쏟은 눈물을 닦느라 힘들었습니다.
음악 피정을 인도하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신자분들과 함께 찬양하는 것입니다. 왠지 영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느낌이랄까? 제가 저의 부족한 삶과 신앙 이야기로 운을 띄우고, 그들의 삶과 이야기로 답을 받는 느낌이 전해져 오면, 저의 찬양이 더 힘차고 올곧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찬양에 중독되고, 평생 함께 찬양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을 굳건히 가지게 됩니다.
글ㅣ김상균 라우렌시오(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