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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기다리기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6-17 09:55:25 조회수 : 557

저는 15년 동안 한 본당에서 청년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강요도, 어떠한 의무감도 없이 자발적으로 제가 좋아서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분에 넘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아직도 청년들과의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숫기가 없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의 간절한 눈을 보았을 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좀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세요. 오래오래 함께 해 주세요’ 이렇게 시작해서 처음에는 사목자의 마음으로, 저의 음악적인 능력을 총동원해서 성가 연습을 준비했고, 성가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도 준비했습니다. 또 좋은 성가 공연에도 초대하고, 성가 경연대회도 준비시키면서 좋은 것을 주려고 애를 썼고, 가끔 있었던 뒤풀이도 참여해 청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좋은 결과와 보람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겉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는 청년 공동체의 모습에 만족하고, 여기까지가 나의 소임이고 몫이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점점 해가 가고 아이들과 더 깊게 소통 하면서,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정 생활, 학창 생활, 취업 준비, 직장 생활, 연애, 결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청년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다양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제가 그동안 감지하지 못했던 어두운 이면이 많이 있었고, 교회가 과연 이들의 삶에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일주일이 심히 궁금해졌고 이렇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잘 지냈는지, 얼마나 바빴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성당에서 쉬고 위로받아서 일주일 동안 살아갈 힘을 내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기도가 필요한 청년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하고, 냉담 중인 청년에게 살가운 문자도 날리고, 생일과 축일도 기억해주고, 오랜만에 성당을 찾은 청년에게는 들어올 때부터 반색하는 눈빛을 날리고, 그 청년이 좋아하는 성가로 선곡도 했습니다. 청년 성가대에 있다가 결혼한 청년, 취업 문제로 다른 곳으로 본당을 옮긴 청년들에게도 가끔 문자나 전화를 합니다. 그냥 보고 싶고 놀러 왔으면 하고, 궁금해서 그럽니다. 한참 전화로 이런 수다를 떨다가 제가 아무런 압박을 주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냉담 풀고 성당 갈게요.” 함께 열심히 준비한 성가를 봉헌하고 감동했던 추억,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 순간순간 찾아온 소중한 신앙체험들. 이 모든 것들이 청년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살아 움직이고, 나이가 들어 새로운 신앙공동체에서도 이어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15년 동안 무수히 많은 롤링페이퍼를 받았습니다. 가장 많이 본 내용은 이렇습니다. ‘선생님! 오랫동안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청년 사목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기다리기···’


글ㅣ김상균 라우렌시오(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