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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또한 의미가 있으리! 왜?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6-03 09:21:31 조회수 : 627

저에게 있어 유년 시절 중학교와의 첫 만남은 부정적인 인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연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중학교 입학은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교육부에서 일방적으로 배정을 하는 것이었기에 개개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게 될 학교와 수동적으로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게 될 중학교는 많은 학생이 선망하는 학교였지만 저는 절대 기쁘지 않았습니다. 살고 있던 집에서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기를 내심 원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더욱 낙담했던 것입니다. 중학교 입학 후 약 30분의 거리를 매일 도보로 다니면서 저의 마음은 점점 불만으로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필 이 학교에 입학해서 이렇게 힘들게 걸어야 하지?” “만약 집 앞 학교에 입학했으면 잠도 더 잘 수 있었는데” “하느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네

 

이렇듯 제가 직면한 현실을 한탄하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학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누그러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학을 함께 하는 소중한 동반자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신세 한탄을 하며 걷던 길과 시간이 어느새 친구들과 함께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며 우정을 다지는 소중한 공간과 시간으로 변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성장기에 접어든 저의 육체는 본의 아니게 적절한 걷기 운동을 하게 된 결과 때문인지 몰라도 예상치 못한 큰 외적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에게 큰 시련과 도전으로 여겨지며 불평불만으로 점철된 상황이 어느새 변화된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통학을 함께 한 친구들은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평생의 동반자로 저의 옆을 든든히 지키고 있으며, 통학으로 다져진 기초체력 덕분에 저는 지금도 건강한 육체를 지니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언제나 삶 안에 행복한 순간만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나의 기도 지향’, ‘나의 행복 기준과는 반대되는 악조건의 상황과 만나게 되면 하느님을 의심하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왜 내가 이 순간을 견뎌야 하는가?”라며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이미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당신의 계획대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를 당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 순간,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 하느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글ㅣ진효준 요셉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