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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멍때리기? 하늘 마음 따르기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5-27 09:23:13 조회수 : 547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승천과 함께 등장한 천사 한 쌍은 지금 사람들에게 왜 그리 멍하게 있느냐, 어서 갈 길을 가라며 나무라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통해 느끼는 힐링을 중시하는 요즘이지요. 불을 품고 타오르는 장작을 멍하니 바라보는 불멍’, 나무와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숲멍’, 강과 바다의 흐름에 맡기는 물멍등 멍하니 바라보는 미학으로, 사람들은 바쁨과 압박감을 벗어나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쉴 자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복의 순간에 천사들이 사도들을 재촉하는 것처럼 본인다면 천사가 하늘에만 살아서 우리 사람살이의 서글픔을 모르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사도들은 그저 초점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릴래아라는 현재의 땅을 딛고, 오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희망을 물으며 사명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승천하시는 그분을 유심히 바라보고(사도 1,10)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는 볼 수 없는 분임에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주님과 그들의 끊어지지 않을 관계의 연속성과 역동성을 느껴봅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루카 24,52).

 

사도들의 마음은 의 무심함보다 큰 기쁨을 얻는 유심함이랄까요? 이 유심함은 더이상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늘에 오르신 분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도록 내어드림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앙의 어둔 밤이나 시련이라는 불확실성에서도 내 안에 갇혀있지 않고, 오히려 시야에서는 사라지셨으나 여전히 우리와 그 끈을 잇고 계신 그분을 떠올리며 힘을 얻게 합니다. 그런 분께서 지금도 함께하고 계심의 표징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구름 너머 시야에서 사라진 분으로서만이 아니라 구체적 실체로서 부활의 몸을 내어주고 계십니다. 그 내어줌이 그분과 우리의 관계를 여전히 지속하게 숨을 불어주며, 우리가 바라보던 그 하늘로 이끌어주는 길이자, 이 땅에서 일어나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변방까지 갈 수 있는 기쁨이 됩니다.

 

바로 성체 성사가 그리스도라는 하늘 마음을 따라가고 기쁨을 받는 유심함의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 마음의 땅과 세상에 예수님이라는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사도들, 그리고 성모님과 함께 하늘 마음을 되새기면 어떨까요? 여기 우리에게도 허락된 이 승천의 현장에서, 기뻐하라는 천사들의 초대에 크게 아멘을 말하면서, 이제 어디로 가고 싶어지시나요?


글ㅣ나형성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