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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주신 일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5-20 10:18:06 조회수 : 526

처음 제가 농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걱정하시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농사는 하늘이 주신 일이여. 사람의 힘으로만 하는 일이 아니여. 배우는 마음으로 해야 되는 거여.”

 

사실 해마다 기후변화가 계속되고, 날씨도 예측할 수 없어서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잘되는 작물이 달랐고, 땅은 포실해지다가도 강퍅해지고 예측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땅을 살리는 농업을 한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열매의 양에 따라서 그해의 농사가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를 판단하곤 했습니다. 땅도 살리고 열매도 잘 나오면 좋으련만, 항상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그런데 문득 떠올려보니,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오신 제 주위의 어르신들은 설사 태풍이 고추의 반을 쓸어간대도 그저 낙심만 하지 않고, 절반을 거둘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리고 계셨습니다. 제 부모님도, 아랫집 할머니 댁도 이만한 게 어디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들께 농사는 잘되고, 못 되는 기준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일이기 때문에 놓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아침 겸 점심으로 얼린 떡 한 덩어리 밭두둑에 올려놓고 밀린 호미질에 열심인 우리를 아랫집 할머니께서 부르셨습니다. “조 간호사! 밥 먹고 일해.” 할머니는 수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시니, 머리에 쓴 베일을 보시며 우리를 조 간호사’ ‘김 간호사라고 부르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큰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계셨는데, 고무대야 안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돌솥밥, 김치 한 대접, 미역국, 고추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딸도 싫다고 호미 한 번 잡지 않는데, 뭐가 좋다고 이렇게 농사져. 자식 같어서 밥 한 끼 해 주고 싶었어. 맛은 없어도 먹고 일해.” 그리고 이어서 할머니는 우리 같은 사람하고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잊을 수 없는 아침 밥상이었습니다. 투박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와서 아침을 들라.”라고 밥상에로 초대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주신 일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소출을 거두는 농사꾼이 아니라,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사고가 토마토의 개수를 헤아리고, 더 큰 수박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을 넘어서, 기후 위기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계속 열매를 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고, 오늘 땅을 일구고 있다는 그 자체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글ㅣ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장상연합회 JPIC분과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