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이야기는 성경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친숙한 상황을 설정하여 빗대어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비유는 그리스어로 ‘파라볼레’인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 ‘마샬’을 떠올리게 합니다. ‘파라볼레’는 ‘어떤 한 가지가 다른 것과 나란히 놓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마샬’은 ‘수수께끼’, ‘격언’, ‘경구’와 같은 지혜 문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의 현상이나 가치를 새롭게, 또는 다르게 생각하거나 묵상하여 참된 지혜를 얻게 하는 것이 비유로 가르치는 목적이자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비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한 방법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의 형태로 가르침을 전해주셨지만, 효과적으로 사용한 예는 구약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2사무 12,1-15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이야기에 사용된 소재들은 대부분 당시 팔레스티나의 환경(마르 4,30-32; 루카 13,6-9 등 참조)이나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삶의 요소들(마태 13,44-46; 루카 19,11-27 등 참조)이었습니다. 따라서 일상을 다시 생각해 보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되새기는 작업은 비유를 깨닫는 데 필요합니다. 대단한 정보나 비밀스러운 신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일상 안에서 놓치고 살아간 것들에 대한 재발견과 탐구가 비유를 대하는 기본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비유 이야기들 속에 담긴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핵심 주제인 하느님 나라와 그 하느님 나라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집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실현되었음과 미래에 완성될 것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는 인간 눈에 초라한 모습을 띠지만 그 실상을 발견한 자는 모든 것을 처분해 손에 넣을 만큼 값진 것이라고(마르 4,1-9; 마태 13,31-33 등 참조), 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며, 하느님의 선하심과 용서의 삶을 닮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루카 10,25-37; 15,11-32; 18,9-14; 마태 7,7-11 등 참조). 그러나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적대자들은 그분의 비유 말씀 역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마태 13,10-17).
비유 이야기들은 그저 재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 선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증명하는 증인들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당신의 나라로 초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글 | 이승환 루카 신부(제2대리구 복음화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