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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호숫가에서 생명리듬에 낚이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4-29 11:27:40 조회수 : 558

알고리즘 호숫가에서 생명리듬에 낚이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요한 21,3).” 부활하신 주님을 이미 만났으면서 왜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느냐며, 제자들이 한심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러나 놀랍게도 그 자리는 신앙의 드라마가 펼쳐진 삶의 현장이자 교회의 역할이 드러난 생명의 호수가 되었습니다.

사실 호수는 마치 우리의 기분처럼 잔잔하다가도, 거센 풍랑이 일기도 하며, 그 수면 아래로는 다양한 생명의 역동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제자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저 익숙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자기방식의 소리만 따라갔습니다. 허탕이죠.

 

어쩌면 제자들이 경험했던 호수의 밤을 우리도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팬데믹이 흔들어 놓은 어제와 그 여파가 낯설고 두렵기도 한 오늘이라는 호수 위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듣고 바라보며, 어떤 마음으로 그물을 던지고 있나요? 분명 오늘 호수 곳곳에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혼재합니다. 알 수 없는 깊이가 주는 외로움, 때로는 공포를 일으키는 물살에 유령이다를 외치기도 하죠.

 

이런 현실은 우리 손바닥 위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바로 핸드폰과 그에 연결된 유튜브를 비롯한 검색창들은 자극적인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알고리즘의 호수로 다가옵니다. 불안과 호기심의 그물을 던지며 그 호수에 접근했다가는, 자칫 알고리즘에 낚여서실제로 관심도 없던 수십 개의 영상과 함께하죠.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소모된 자신을 보기도 합니다. 내 얼굴(persona 가면)이 익명성 속에서 표류하다가 멀미가 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말씀하신 죽음의 문화는 어쩌면 이 시대에 전쟁마저 관람과 오락거리로 탈바꿈시키며, 중독적 알고리즘의 여파를 더 거세게 하여 공동체의 마음을 파편화시키고 있습니다. 아마 제자들도 이처럼 호수의 어둡고 부정적인 알고리즘에 갇혀서 허탕을 치며 허탈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부정적인 알고리즘을 생명의 리듬으로 바꾸어주시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얘들아,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요한 21,5-6).” 임마누엘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 말씀이 보여주듯, 예수님은 우리를 부정적 알고리즘의 소용돌이에서 익사하지 않고, 생명의 리듬으로 새롭게 하고 구원으로 부르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생명리듬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생명의 문화가 교회라는 그물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그물에 담긴 물고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펄떡이는 생명력과 기쁨을 의미합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요한 21,11).” 이 고기잡이는 주님 마음 근처로 모여 낚여진 이들이 충만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이 주보를 펼치신 그 자리, 내 얼굴로 만나는 성사의 자리는 이미 부활의 희망이 들려오고 보이는 호숫가입니다. 지금 우리는 드러내시고, 다가오시는(요한 21,1)예수님에 의해 역동적으로 함께 낚여지는 중이니까요. 바로 오늘이 우리 삶의 뱃전 오른편으로 불안, 도피, 호기심의 그물이 아닌, 생명리듬에 맞춰 사람스럽고, 사람다운 믿음의 그물을 던질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침묵과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는 얼굴(persona 인간)이 중요하겠죠? 그럼 여기서 좀 제대로 낚여주시겠습니까?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초대하시는 분께로.


글ㅣ나형성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