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안에서 참된 쉼
저는 제 자신이 어지간히 바쁘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은 실제 처리해야 할 일과 감당해야 할 책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제 성향 탓이 더 큽니다. 저는 한 가지 일을 할 때 과단성 있게 빨리 진행시키지 못하고, 지지부진 오래 붙들고 있습니다. 두세 가지 일이 한꺼번에 겹치면 실제 그 일을 처리하기도 전에 미리 걱정과 부담감이 앞섭니다. 그러니 남들이 의례 하는 정도의 일을 하면서도 남들보다 유난히 바쁘고 힘든 삶을 사는 셈이 되곤 합니다.
이렇게 바쁘고 힘든 삶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단지 제 앞에 닥친 많은 일과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 안에서는 더 심각한 이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일에 매진할 때의 생동감과 일을 잘 마무리했을 때의 성취감을 느끼면서 그동안의 힘듦을 풀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저에게 주어지는 일과 부담이 그냥 싫어집니다. 아무 일도 하기 싫어집니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증세가 더 심해지면 제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제 삶이 의미 있는 삶인 건지 근본적인 회의도 합니다.
이 지경까지 갔을 때 필요한 것은 오직 ‘쉼’입니다. 그래서 하던 일을 무조건 멈추고 온종일 빈둥거리거나, 시체처럼 잠만 자기도 합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쉬겠다고 했던 이런 일들의 결과는 개운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평소 부족했던 잠을 충분히 보충하려 했는데 정작 몸은 더 무겁고 머리는 몽롱해집니다. 일에 관해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훌쩍 떠나보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불안하고 조바심이 납니다. 차라리 일하는 것이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닙니다. 이미 몸과 마음은 밑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고갈된 상태이니 쉬기는 해야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어찌 보면 쉼에 관한 고민은 굳이 새삼스러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마땅히 간직해야 할 관심사에 오랜 기간 너무 소홀했음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쉼을 고민하게 된 것은 단지 시대적인 변화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전 시대에는 쉼이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거나 별 의미 없는 일이었는데 시대적인 상황이 바뀌면서 새삼스럽게 호들갑 떨면서 관심거리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우려하는 것처럼 누군가에 의한 상업적인 선동 때문만도 아닙니다.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쉼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삶의 요소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쉼을 고민하게 된 상황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쉼의 본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음을 반증해줍니다. 그동안 쉼에 관한 우리들의 정당한 관심이 왜곡되고 제한당하는 시대를 지내온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 쉼을 고민하게 된 것은 이제라도 쉼의 올바른 의미와 참된 쉼의 중요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쉼의 올바른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쉬는 것이 참된 쉼일까요? 물론 이 점에 있어서 획일적인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시대 상황에 따른 쉼의 의미가 다르고, 개인에 따라 저마다 적합한 쉼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좀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쉼의 본질적인 의미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쉼의 본질적 의미에 비추어 저마다의 쉼을 성찰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야”라는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면, 더욱더 참된 쉼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절실합니다.
흔히 문제 해결은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데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참된 쉼의 의미 역시 단순하게 쉼의 반대 상황, 즉 우리에게 쉼이 간절해진 이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절박하게 쉼을 요구하는 원인 혹은 상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원인을 적절하게 제거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참된 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 간절하게 쉼을 필요로 할까요? 쉼의 단순한 반대는 ‘힘듦’ 또는 ‘피곤’입니다. 사실 이때의 힘듦과 피곤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면적인 피곤입니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일에 넌더리가 나고, 그저 아무 일도 하기 싫고,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금 자신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 근본적인 회의까지 하게 될 때야말로 참된 쉼이 절실한 때입니다. 힘들고 지침의 근본 원인은 내면적인 고갈입니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궁극적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에 대한 충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쉼은 진정한 쉼이 될 수 없습니다. 내면적으로 삶의 궁극적 의미를 깨닫고 충만하게 하는 쉼이야말로 참된 쉼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의미에서 ‘삶의 궁극적 의미 확인’은 내 안의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을 본뜬 하느님의 모상(模像)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부여해 준 소중한 나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것, 하느님의 소명(召命)을 깨닫는 것이 삶의 궁극적 의미 확인입니다. 소명에 따라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올바른 삶을 충실히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궁극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교 신앙의 의미에서 참된 쉼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세상일에 지치고 메말랐을 때, 내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궁극적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하느님 안에서 참된 나를 확인하고 하느님의 진리로 나의 내면을 재충전하는 일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참된 쉼’입니다.
글ㅣ오지섭 사도요한(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