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르 6,30-44), 물 위를 걸으신 기적(마르 6,45-52), 병자 치유(마르 6,53-56) 등 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기적이란 인간의 힘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초자연적인 신비로운 현상을 말합니다. 즉, 과학이나 이성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들은 다릅니다. 성경에서 전하는 기적은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 안에서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사건을 통해 당신의 뜻을 알리거나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도움과 구원을 주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크게 드러나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당신의 말과 행동, 전 인격적으로 선포하는 핵심 메시지인 하느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고,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지고 있다는 표징을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들을 행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권능을 받고 있음을, 하느님의 권능과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의 기적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가령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치유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자연을 다스리는 기적을 통해 당신의 권능을,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써 당신이 생명의 주관자이며, 하느님의 아들임을 보여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적의 신비로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사랑과 존재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해주는 표징이 되지만, 기적 자체가 믿음의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참다운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가운데 생겨납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의 사실 자체가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전하고자 고심했던 기적 이야기 속에 담긴 신앙의 진실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제 사건을 추적하는 자세가 아니라, 나의 삶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가오는 구원 사건의 진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카 11,29).
글ㅣ이승환 루카 신부(제2대리구 복음화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