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신혼여행을 어디로 다녀오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사실 신혼여행, 흔히 말하는 허니문(Honeymoon)은 어딜 가도 상관이 없지요.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질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처럼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지인들 앞에서 결혼식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이국적인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허니문의 개념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당시 산업혁명 이후 교통수단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갓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기차나 화려한 증기선을 타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시작에 의미를 두게 된 거죠. 그런데 허니문의 유래는 그것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고대 노르웨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당시 신랑이 신부를 납치해 숨겨두는 관습이 있었는데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딸을 찾아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할 때까지 신랑과 신부는 숨어서 기다린다는 거죠. 그리고 숨어있는 동안 신랑과 신부가 매일 꿀로 만든 술을 한 잔씩 마셨는데 이 꿀로 만든 술을 마시는 30일 동안을 ‘허니문 기간’이라고 불렀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납치 감금의 중대 죄목이 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허니문은 꿀같이 달콤한 달, 밀월(蜜月)로 결혼 직후의 즐겁고 달콤함 시기를 일컫는 용어가 됐습니다. 그런데 정치에도 허니문 기간이 있답니다. 딱 잘라 한 달, 두 달, 이렇게 시한을 정할 순 없지만, 취임 초기 대통령 행보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자제하고 응원하는, 그런 기간을 말하죠. 사실 아무리 인수위를 구성하고 새 정부 구상을 잘한다 하더라도 전 정권의 국정운영을 인수인계 받아 나라 살림을 꾸리다 보면 처음엔 서툴고 미흡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기간이 정치적 허니문 기간이라고 볼 수 있는 거지요.
이 기간만큼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정치권도 당장 대선 패배에 따른 책임론으로 내분을 추스르기에 여념이 없고, 언론 역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 당선인이기에 눈치 없이 비판하고 견제하길 꺼리는, 그런 시기인 셈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허니문을 무조건인 비판 자제 기간으로 보는 건 절반의 이해에 불과하다고 해요. 거기엔 정치적 허니문의 원조격인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취임 직후의 배경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1933년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시작된 의회 특별회기 100일 동안 의회와 협력해 경제위기 극복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를 통해 경제위기 탈출의 기반을 닦았다고 합니다. 결국, 정치적 허니문은 무조건적인 비판 자제가 아니라 견제세력과의 협력을 통해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더 발전시키는 그런 기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럼 다시 신혼부부의 허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새내기 부부들은 각자 꿈꿔왔던 결혼생활이라는 로망을 현실화할 생각에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새로운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두 사람만의 러브하우스 꾸미기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을 때죠. 그리고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 사랑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은 흘러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했던 사랑의 지향점과 표현방식이 어긋나기 시작하고, 사소한 일들이 부부간의 문제가 아닌 집안 문제로 비화되는 차가운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면 달콤했던 허니문 기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때부턴 의리로 산다, 동지애로 산다, 다양한 방식으로 허니문의 종료를 표현하지요.
그러고 보면, 대통령 당선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힘겨웠던 선거 과정을 통해 당선이라는 달콤한 승리감을 맛보는 것도 잠시, 인수위를 꾸리고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멋진 나라를 구상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5년이라는 시간을 계획하지만, 의외로 정치적 허니문 기간이 석 달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됩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역대 대통령 취임 100일 국정 지지율’에 따르면,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직후 지지율이 60%였다가 취임 100일 후엔 40%로 떨어졌고, 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고ㆍ소ㆍ영인사파동으로 취임 직후 52%였던 지지율이 100일 후엔 21%까지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 84%라는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취임 100일 후엔 78%로 미미하긴 하지만 지지율 하락세를 보였고요.
이 정도면 부부의 세계에서도, 대통령의 세계에서도 허니문 기간의 소멸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에서 유독 허니문을 길게, 오래도록 유지하는 부부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한결같이 ‘초심’이라고 말하는데요.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은 달라질지언정 사랑했던 그 첫 마음은 오래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대통령 당선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밥 먹을 시간, 잠잘 시간까지 쪼개가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국민들에게 간절히 호소하며 낮은 자세로 지지를 바랐던 그 초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의 정치적 허니문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거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겁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는 갖되 국민 앞에서 권위적이지 않으려는 마음, 부끄러운 자신의 실수와 치부를 가리고 숨기기에 급급하기보다 국민들 앞에 솔직하게 해명하고 양해를 구하려는 마음, 그런 초심을 마음에 담고 있다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기 5년은 며칠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초심의 중심에 국민을 향한 첫사랑이 늘 자리하길 바랍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으려고 칠 년 동안 일을 하였다.
이것이 그에게는 며칠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가 그만큼 라헬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창세 29,20).
글ㅣ이지혜 체칠리아(CPBC 가톨릭평화방송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