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대학입시시험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경쟁하는 게 값진 경험이기도 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합니다. 독일에서 어학 공부와 입시를 위한 비자는 2년뿐이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2년 동안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채찍질하며 피아노 연습을 했고, 독일 전국에 있는 음대란 음대는 다 돌아다니면서 입시 시험을 봤습니다. 그 결과 비자가 만료되기 직전, 어느 한 국립음대 피아노과에 합격했습니다. 드디어 입학허가서를 받았는데 기쁨은 아주 잠시,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졸업 후에 내가 피아노라는 악기로 무얼 하며 살 수 있을까?’
걱정에 앞서 우선 2년 동안의 입시 준비로 잃어버렸던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한국에 잠깐 들어가게 됐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오르간을 배우게 됐고, 오르간은 뜻하지 않게 또 한 번의 입시 레슨으로 바뀌었습니다. 3개월이라는 말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입시 준비를 끝내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 두 번째 입시 시험을 봤습니다. 결과는 그저 놀라웠습니다. 몇 군데 지원했던 음대에 모두 합격했고, 그렇게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오르간 전공으로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담당 교수님이 한국의 국가를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기에 저는 망설임 없이 애국가를 불렀고, 노래를 들은 교수님은 저에게 ‘가톨릭 종교음악과’를 추천해주셨습니다. 교수님은 ‘Kantor(칸토어)’*라는 직업이 있는데, 종교음악감독 역할을 하는 것이며, 이 직업을 가지기 위해선 꼭 가톨릭 종교음악을 전공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전공은 피아노, 오르간, 성악, 지휘를 모두 배우고 소화해야 하는 데 너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재능이 많으니 이 길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고,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하늘에서 준 선물’이니 귀하게 썼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한 번의 입시 시험을 봤고, ‘가톨릭 종교음악과’로 재입학했습니다. 음대의 의대라고 불리는 ‘가톨릭 종교음악과’. 학교를 다니는 4년 내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까 수십 번, 수천 번도 더 생각했지만, 이 악물고 견디며 마침내 졸업장을 쥐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저의 재능들을 고스란히 다 바칠 수 있는 칸토린이 되었고, 제가 세례식 때 기도했던 대로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 칸토어(여성형 명사 ‘칸토린’)는 독일 성당에 있는 직업으로 미사 때 오르간과 피아노 반주, 오케스트라 지휘, 성가 가창 등 성당에서 이뤄지는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하는 교회 음악가를 말합니다.
글ㅣ조아름 안젤라(독일 아헨교구 Franziska von Aachen, 종교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