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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1)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4-01 09:38:15 조회수 : 917

독일에서의 생활도 만 15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하고, 잘 해내야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아노 전공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부터 막연히 클래식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독일을 마음 한 켠에 강하게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아홉 어린 나이에 가족과 처음으로, 그것도 8,415km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활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독일어로 ABCD는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 까막눈 상태에, 지인 하나 없는 넓은 땅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유학을 보내달라는 저의 집요함과 간절함에 두 손 두 발 다 든 부모님은 결국 허락해주셨고, 그렇게 한 달 만에 비행기 티켓을 끊어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독일 베를린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에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쉬지 않고 눈물이 흘렀는데, 옆 좌석에 수트를 쫙 빼 입고 앉아있던 아저씨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고, 왠지 그때부터 혼자 속으로 다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넌 혼자야, 아무도 널 도와주지 않아. 그러니 강해져야 해

 

그렇게 심난한 마음처럼이나 캄캄했던 독일에서의 첫 번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고요함과 적막함에 저는 호기심이 앞섰고, 동네 지리도 모른 채 무작정 바깥으로 나가 동네 구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성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웅장한 성당 외관에 푹 빠져들었고, 매주 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세례를 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라 신앙심이 가장 풋풋하고 불타올랐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례를 받던 날을 기억해보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툭 하고 흘렀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어딘가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첫눈에 보고 반했던 독일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던 첫 날, 설레는 마음으로 성당의 커다랗고 무거운 철문을 여니 찬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두꺼운 암막 커튼이 처져있었고, 그 사이로 분향 향기가 새어 나왔습니다. 암막 커튼을 걷자 뿌연 연기와 함께 분향 향기로 가득 찬 층고 높은 성당의 웅장함에 절로 마음이 경건해졌습니다. 성가 책을 집어 들고 성당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서 뒤를 돌아보니, 영화에서만 봤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미사를 알리는 종이 울렸고, 큰 성당 안을 가득 채우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너무나도 화려한 오르간 연주에 한참을 넋 놓고 듣다가, 읽지도 못하는 독일어 성가를 사람들 눈치 보면서 조심스레 따라 불렀습니다. 미사 내용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미사의 경건한 분위기와 오르간 소리는 그 당시 불타올랐던 저의 신앙심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은혜를 받은 사람이길래 성당에서 이런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순간 저의 기도문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글 | 조아름 안젤라(독일 아헨교구 Franziska von Aachen, 종교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