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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마태 6,25-34, 루카 12,22-34)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3-25 13:12:27 조회수 : 1071

많은 분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뭐냐고 여쭈면 다수가 마태오 복음 634절의 말씀,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라고 하십니다. 저도 철없던 시절, 주로 게으름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말씀을 많이 인용했었습니다.

하지만 625절을 처음부터 한 문장 한 문장 살펴보면, 이 말씀은 게으름을 합리화하라는 것이 아닌, ‘부족한 믿음을 더 키우라는 내용에 더 가깝지요.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등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게으르면서 걱정만 많은 저를 믿음으로 일깨워 주시는 분이시지요.

 

제가 응급실에서 일했다 보니, 예약된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불확정한 상황에서 일을 하며, 주어진 시간이나 인력 등 자원에 비해 턱없이 많은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을 때도 있었고, 드물긴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한 결과가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응급질환이나 외상이라는 것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적절히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질 수 있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항상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목숨, 건강 등은 너무나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거든요. 어느 한 분야에 치중하다 보면 결국 다른 부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요. 내가 잘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된 거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나쁜 결과가 나온 거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은 욕심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 걱정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생명 앞에서, 암이나 감염병 앞에서, 자연재해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주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무언가 열심히 한다 한들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다른 피해가 생기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그야말로 정답이 없는문제이고,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그 필요함을 아시는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복음 말씀이 지친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고, 욕심과 교만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여 이를 잘못 해석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계명을 통해 신앙생활과 가족, 이웃에 대한 사랑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있었던 역사상의 여러 악행들, 예수님께서 세상 걱정은 인간의 몫이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며 수수방관하는 자세는 시쳇말로 선 넘은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25-34, 루카12,22-34)


글 서주현 에드부르가(전 명지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