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의 꿈은 정말 소박했습니다. 아주 깊은 산골로 시집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었지요. “그게 뭐가 꿈이야?”라고 물으시겠지만, 저는 그게 좋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저의 부모님께서 섬에 사시면서 평생 농사지으시는 모습이 저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릴 적 저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었습니다. 화가가 되는 것이었지요. 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틈나면 장독대에 스케치북을 기대어 바깥 풍경을 그리곤 하였습니다. 그 순간에는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새 소리나 풀벌레 소리도, 모기 소리도 없는 진공상태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아버지께서 너무 아프셨는데 병원에서 치료가 안돼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늦둥이인 저에게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공소회장님께서 이런 저를 보시며 “사순 시기에 십자가의 길을 사십일 동안 바치면 소원을 들어주신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들으면 기복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 희망의 끈을 꼭 잡고 싶었습니다. 마침 사순 시기였기 때문에 밤 8시에 기도하러 공소로 올라갔지요. 사실 올라가면서도 가로등 하나 없었던 그 어두움은 어린 저에게 무서운 마음이 들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공소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는 1처부터 14처까지 장궤하며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주님!”하고 간절히 기도드렸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누워계신 아버지 곁에 배 깔고 누워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아버지 영정 사진은 울 애기가 그려줘.” 이 말씀을 듣고 머리가 아뜩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은 풍경이지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저는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순 시기가 끝나갈 무렵, 정말 기적같이 아버지께서 일어나셨습니다. 병원에서도 놀랐고, 우리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놀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는 울 애기가 기도해줘서 나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곧바로 공소로 뛰어 올라가 혼자서 엉엉 울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로워서 “주님, 저를 당신께 봉헌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저는 밭에, 그리고 세상에 그림을 그립니다. 복음의 기쁨을 가지고 삶을 그려가고 있으니 꿈을 이룬 것이지요.
글 |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장상연합회 JPIC분과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