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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나눔의 더불어 사랑’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3-18 10:41:42 조회수 : 925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나온 말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현대 사회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일부 사람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말이 되었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또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나의 기준대로 판단하는 것, 나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만이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하는 판단입니다. 나에게 이로우면 악도 선이 될 수 있고, 나에게 해로우면 선이 악이 되기도 합니다.


‘내로남불’식 사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절대적 진리 혹은 마땅함의 기준이 무너져버린다는 점입니다. 사실 현실 삶에서 절대적 진리 혹은 마땅함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마다의 기준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논란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기준이 상황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전에는 이것이 진리라고 했다가 상황이 달라졌다고 진리가 아닌 것으로 바뀌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기준마저 뒤바꿔버릴 수 있는 것이 나의 이익입니다. 철저히 나의 이익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현대 사회 우리들의 삶에서 이러한 극단적 이기주의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나갈 때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선택할 때에도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에 따라 판단합니다. 사회 전체나 국가 차원의 사안에 대해서도 철저히 나의 이익에 따라 평가하고 반응합니다. 나의 이익과 연결되는 사안은 적극 지지하면서도, 나의 이익을 해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극렬히 반대합니다. 심지어 모두를 위한 공공성을 지니는 일이나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이라도 나의 이익에 거스른다면 냉정하게 거부합니다.


현대 사회에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것은 전반적인 시대 흐름에 따른 결과입니다. 물질적 기준을 우선하는 가치 판단, 치열한 경쟁의 상황, 냉혹한 능력주의, 살벌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현실, 불안정과 불확실성의 혼란 등이 결국 나와 나의 이익에만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것만을 앞세우는 이기심을 경계하는 것은 여러 종교와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에는 묵자(墨子)의 겸애(兼愛)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묵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르침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묵자는 노동자 등의 하층 계급출신 지식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반영한 사상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공자(孔子)와 유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와 다른 분석과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묵자의 사상은 흔히 겸애의 가르침으로 대표됩니다. 겸애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더불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나만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더불어 사랑입니다. 묵자의 사상에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더불어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 제시입니다. 이 지점에서 묵자가 주목한 것은 인간의 이익 추구 본능입니다. 묵자는 인간의 이익 추구 본능을 무조건 억제하는 방식으로 더불어 사랑을 실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묵자는 인간의 이익 추구 본능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결국 나에게 이익인가에 관한 생각의 전환을 제시합니다.


흔히 인간은 극단적으로 내 것만을 챙기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모든 것을 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최고의 이익 단계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내 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내 것만을 챙기려다 모든 것을 잃지 말고, 함께 나누면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이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법임을 일깨워줍니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아니라 겸애, 즉 나눔의 더불어 사랑이 오히려 나에게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묵자의 겸애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닮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적은 빵과 물고기로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그리스도교의 나눔과 더불어 사랑의 가르침이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각자 내가 먹을 것만을 챙기면서 함께 나누지 않았다면 수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음식이 남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것만을 챙기려는 이기적 욕심이 한껏 드러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나눔의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는 나눔의 사랑을 보여주셨듯이 먼저 나부터 내 것을 나누고자 하면 점차 더 많은 사람이 나눔의 사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나부터 시작하는 점차적인 변화가 극단적 이기주의를 넘어 함께 나누는 더불어 삶의 세상을 만드는 가장 힘 있는 실천 방법입니다. 


비록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이런 작지만 힘 있는 사랑의 길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삶이지 않을까요?


글 | 오지섭 사도요한(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