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수원주보 기사

20대 대선을 떠나보내며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3-11 11:37:04 조회수 : 835

드디어!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습니다. 내가 한 표를 던진 후보이건 아니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이 땅의 국민들이 선택한 차기 리더 최종 1인이 탄생한 겁니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대통령과 함께 우리는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을 살아가야 하지요. 

사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재보궐선거까지, 이른바 선거철은 시사프로그램의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선도 지난 해 하반기부터 각 당의 대선주자가 속속 결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지요. 선거 100일을 남겨놓을 즈음부턴 거의 매일 타 방송 시사프로그램들과 비교되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을 비롯해 선거캠프와 선대위, 선대본 주요 관계자들과 거의 매일 접촉하다시피하며 방송 인터뷰를 요청하고 또 일정을 조정하는 일이 하루일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매일 출석체크 하다시피 공을 들인 인터뷰이가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날은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작가의 능력 부족인 것 같아 하루 종일 심적으로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호된 비판 속에 치러진 이번 20대 대선은 또 다른 면에서 깨달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후보 당사자는 물론 배우자와 가족들까지 들추어지는 걸 보면서 ‘아! 정치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구나. 함부로 정치판에 뛰어드는 게 아니구나’, 이런 깨달음이요. 특히 대선기간 내내 제기되는 의혹들은 이게 정말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것들이 많아서 혹시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의혹을 만들어내는 전문공장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상상초월의 사건들이 매일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사프로그램 작가로서 이런 대선 현안들을 다루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종교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나 정책들을 다루기 위해 여당 의원이 출연하면 ‘가톨릭교회가 언제부터 좌파방송이 됐느냐’는 청취자들의 항의성 문자가, 반대로 야당 의원이 출연하면 ‘평화방송이 언제부터 수구보수가 됐느냐’는 항의성 문자가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종교방송이 현실정치에 개입해도 되냐며 후원금을 끊겠다는 협박성(?) 문자까지 간혹 날아왔지요.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교방송은 세상 일이 아닌 종교의 범주 안에만 한정돼 있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가끔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넋두리가 좀 길어졌습니다만,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대선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나니 이제야 한 짐 내려놓은 듯 어깨가 가벼워집니다. 물론 누군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대선 결과를 놓고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새로운 걱정을 안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혼란의 시간은 끝이 났고 국민들의 뜻이 모인 새로운 리더는 이미 탄생했습니다.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이젠 마음 모아 함께 나아가야 할 때인 거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를 잘 이끌라고 국민들이 채용한 대통령에게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바라고 또 원해야 할까요? 

물론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원하는 대통령의 리더십도 다르겠습니다만, 저는 리더십을 말할 때 꼭 전제되었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나는 누구다’라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인지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그 다음 단계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문득 2천여 년을 관통해온 예수님의 리더십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누구길래,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뜻밖에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서 곳곳에 예수님의 리더십을 말해주는 존재론적 해답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죠. 

“내가 생명의 빵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문이다.”(10,9), “나는 착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포도나무요.”(15,1) 등등 요한 복음 곳곳에 나는 누구라고,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친절하게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소개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존재론적 자기소개 멘트에서 찾을 수 있는 리더십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건 바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 ‘빵의 리더십’, 어두운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잘 이끌어줄 ‘빛의 리더십’, 어느 때고 간절히 청하고 두드리기만 하면 활짝 열어 반겨주는 ‘문의 리더십’, 양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착한 목자 리더십’,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내 능력 이상의 열매를 맺게 해 주는 ‘참포도나무 리더십’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리더십들을 아우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리더십, 그건 바로 ‘섬김의 리더십’이었지요. 국민들이 대통령 당선인에게 권력을 쥐어준 진짜 이유, 그건 앞으로 5년 동안 ‘국민을 잘 섬기라’는 엄중한 명령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요한 13,14-15)


글 | 이지혜 체칠리아(CPBC 가톨릭평화방송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