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응급실에서 15년 이상 근무하였고, 진료 경력은 약 20년 정도 됩니다. 특히 마지막 10년 정도는 소아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야간과 휴일에 갈 곳을 찾기 힘들거나 다쳐서 응급처치가 필요한 어린이 환자를 진료하였고, 코로나19 감염증이 발생한 이후 2020년부터는 병원 입구에 임시로 만들어진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면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열이 나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 또는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을 하여 자가격리된 환자들을 진료하였습니다.
제가 슈바이처라던가 마더 데레사, 이태석 신부님처럼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지역에서 나를 희생하며 살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 ‘무의촌’에 가서 일할 수 없으면 ‘무의 시간’에라도 일을 하자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잘 버티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한 때 나름 독실한 신자였지만, 주일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점점 냉담의 길로 빠져들게 되는 부작용도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마르 2,27).’,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루카 6,9).’ 라고 바리사이파들에게 분명 말씀하셨다는 것을 핑계로 염치없이 냉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도 받아주실 거야’ 하면서 말이죠.
코로나19 이후 선별진료소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열이 나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서 자가격리 중인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과 동선이 섞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병원 출입이 제한되거나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응급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제 때 진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도 많았습니다. 코로나19 방역 규칙은 지켜져야 하지만, 상황이 계속 바뀌면서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의 율법처럼 법에 갇히게 되는 순간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법이든, 인간의 법이든 존재의 이유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교만함으로 인해 앞으로 어떠한 재난상황이 닥쳐올 지 모르지만, 재난상황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실천한다 하더라도 법에 갇혀있던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꾸짖음을 모두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 서주현 에드부르가 (전 명지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