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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십자가를 그으면 더 맛있어질까?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3-04 10:34:23 조회수 : 802

제가 몸담고 있는 사회복음화국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도시락 나눔을 합니다. 봉사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에 담아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께 배달해드립니다. 하루는 밥이 다 되어 뒤집고 있는데, 한 자매님이 신부님, 밥에 십자가 그으셨어요?”라고 물어보더군요.

 

혹시 여러분도 밥에 십자가를 긋습니까?

왜요? 그렇게 하면 밥이 더 맛있어지나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밥이 다 되면 꼭 밥에 십자가를 그으셨습니다. 그리고 밥을 뒤집고 떠서 저희에게 주셨지요. 그래서 저도 밥에 꼭 십자가를 긋습니다. 어머니의 신앙고백을 제가 보고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밥이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은 밥이 맛있어지라는 주문이 아니라, 가족과 밥을 나누어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신앙고백일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를 긋는 것은 밥 만이 아니지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나의 삶에 십자가(성호경)를 긋습니다. 이 역시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신앙고백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십자가를 그으면서 어떤 신앙고백을 하십니까?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하느님을 믿고 있고, 또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믿는다는 신앙고백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만큼 우리의 신앙고백도 함께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십자가(성호경)를 늘 우리 앞에 긋고 있습니다. 옆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바로 앞에 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면 어떨까요? “주님, 제가 하려는 모든 일에 당신의 뜻을 앞에 두게 하소서.” “제 생각과 행동에 앞서 당신의 뜻을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이렇게 고백하고 노력한다면, 밥맛은 변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삶이 더 맛있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어쩌면 유혹자 앞에서 긋는 그분의 십자성호요, 신앙고백은 아니었을까?’ ‘내 생각과 뜻 그 앞에 하느님의 뜻을 두겠다는 그분의 십자가요, 신앙고백이 아니었을까?’ ‘혹시 그분은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긋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아닐까?’ 묵상해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보다 빵으로 사는 날이 많고, 하느님보다 세상을 따를 때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도에 응답을 바라며 하느님을 시험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었으면 좋겠습니다. 빵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앞에 두는 신앙고백으로 이번 사순 시기를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봅시다.


글 | 이규현 가롤로 보로메오 신부(사회복음화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