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 저희 공동체는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밥을 한 솥 해서 뒷산으로 갔습니다. 마치 제삿밥을 챙기듯 맛나게 밥을 해서 예쁘게 양파망에 넣은 뒤, 부엽토 위에 올려 낙엽으로 잘 덮어줍니다. 일주일이나 열흘 뒤 가보면 양파망 한가득 하얀 꽃이 피어있게 되지요. 이 꽃들이 바로 우리 땅을 살리는 미생물, 곰팡이랍니다. 이들을 잘 살려 우리 흙과 친해지도록 도와주면, 모든 생명들은 건강하게 자기 몫을 살게 됩니다. 한 줌의 흙에는 수없이 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지요. 그러니 흙을 부를때는 그 모든 생명들을 함께 부르는 것입니다.
미생물들이 흙에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땅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 것입니다. 농약이 뿌려진 땅에는 미생물들이 살 수 없습니다. 또 미생물이 없는 땅에서는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비료는 성장 촉진제로서 본래 흡수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더 잘 흡수하여 보기 좋고 튼실한 작물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 작물이 딛고 있는 터전은 시스템 자체가 깨져서 딱딱하고 강퍅한 흙이 되게 합니다. 호미도 들어갈 수 없이 딱딱한 흙에 농사지으려니 농부들은 트랙터로 밭을 갑니다. 과거에 농부들이 소와 쟁기만으로 농사지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겠지만, 그만큼 흙이 포실하게 살아 있었으니 손이 덜 가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생물이 살아 있는 땅은 굳이 트랙터로 일구지 않아도 저희끼리 숨 쉴 공간을 만들어 흙이 딱딱하지 않습니다. 미생물과 뿌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고 살게 합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뿌리와 협업하여 땅을 살리고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
이 위대한 순환 안에서 하느님의 자취를 봅니다. 이 작은 생명도 당신의 생명과 코이노니아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 |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장상연합회 JPIC분과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