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캠핑 좋아하시나요?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긴 하지만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도 지났으니 곧 본격적인 캠핑 시즌이 시작되겠지요? 저 역시 캠핑족에 합류한 지 10년 정도 됐습니다. 간혹 편안한 집을 놔두고 왜 나가서 고생이냐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 번 상상해 보세요. 푸르른 자연 속에 작은 텐트 하나 쳐 놓고, 밤늦도록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따스함에 불멍을 때리며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편안함이란… 정말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해외여행 대신 캠핑을 떠나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네요. 국내 캠핑 인구가 2018년만 해도 400만 명 정도였는데 2019년엔 600만 명, 코로나19 이후엔 7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니까 국민 7명 중 1명은 주말마다 캠핑장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 셈입니다.
그런데 캠핑을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집 밖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의외로 많은 장비들을 필요로 합니다. 텐트는 기본이고 텐트 밑에 깔아줄 그라운드 시트에 바닥의 한기를 막아줄 별도의 매트, 여기에 한여름이 아니라면 전기요와 침낭은 필수, 한여름에는 따가운 햇볕을 막아줄 타프와 한겨울에는 온기를 더해줄 난로 그리고 하루 세끼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주방용품과 식탁과 의자, 여기에 감성 캠핑을 추구하는 캠퍼라면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준비할 건 한정 없이 늘어나기 마련이죠.
그중에서도 캠핑 장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텐트는 툭 던지면 자동으로 펼쳐지는 팝업 텐트부터 우산처럼 펴고 접는 원터치 텐트, 실내공간이 넉넉한 리빙쉘 텐트, 한 채의 성과 같은 타프쉘 텐트, 유목민 느낌이 물씬 나는 인디언 텐트에 건강을 생각한 면 텐트까지. 나름 캠핑을 좀 한다는 분들은 적게는 두세 개, 많게는 네다섯 개 이상의 텐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간혹 텐트를 치고 걷는 일조차 귀찮다는 분들은 캠핑카를 마련하기도 하지요. 국토교통부 추산에 따르면 국내 등록 캠핑 차량은 2011년 1,300대에 불과했지만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엔 3만 8,260대로 약 30배 가까이 폭증했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코로나19로 경제가 전반적인 침체기를 맞는 동안에도 캠핑 관련 용품 시장은 매해 4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달성했다고 하니 가히 코로나 시대의 효자종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캠핑 인구가 이렇게까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조금 씁쓸한데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적 모임 인원이 제한되면서 가족·친지, 이웃, 친구들과 소통하고 친교를 나누어야 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심지어 코로나 블랙이라는 이름의 우울증이 사회문제화됐고 그 치유방안으로 캠핑을 떠나는 분들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내가 아닌 타인은 바이러스화 되는 현실. 그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달래고 새롭게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챙기는 건, 어쩌면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견뎌내기 위한 현대인의 또 다른 생존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올겨울,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텐트를 만났습니다. 40년 만의 한파 소식이 떠들썩했던 지난 연말, 캐롤과 함께 구세군의 짤랑이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서울역 광장.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빛 대신 하루 24시간 불빛이 꺼지지 않는 그곳엔 40여 개의 텐트가 옹기종기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요. 하루종일 오가는 자동차의 소음과 행인들의 발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곳엔 재택치료가 불가능한 코로나19 확진 노숙인들을 비롯해 이른바 홈리스들이 병약한 몸을 누이고 있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 처음 텐트가 들어선 건 지난해 11월이라고 해요. 서울역에서 생활하던 노숙인 세 분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생활 치료센터 병동은 부족하고 나라에선 재택치료를 하라는데 노숙인들에겐 재택치료할 집이 없었던 거죠. 구청이나 보건소, 노숙인 시설조차 확진 노숙인은 수용이 안 된다며 모두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인근 교회에서 3개의 텐트와 침낭, 깔개를 후원받아 설치했고 그 후 텐트가 40여 개로 늘어나면서 지금의 텐트촌이 형성되었다고 하네요. 비록 얇고 작은 텐트지만 노숙인들에겐 한겨울 찬 바람을 막아주고 지나는 행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엄연한 사적 공간이 되어준 셈이지요. 물론 본인의 의사만 있으면 텐트가 아닌 고시원이나 쪽방, 임시 보호시설에서 일정 기간 지낼 수도 있지만 노숙인들은 오히려 텐트가 더 편하고 좋다고 하신답니다. 단체생활 위주인 기관이나 시설은 규율이 엄격해 적응하기가 쉽지 않고 또 오히려 세면대나 화장실 등 공용공간에서의 코로나19 감염이 더 걱정됐던 거지요. 결국 한겨울 얇은 홑겹의 텐트일지라도 혼자만의 공간이 몸도 마음도 더 편하셨던 겁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커졌다고들 합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별장도, 낭만적인 전원생활의 세컨드 하우스도 아니지만 그렇게 작고 소박한 텐트는 코로나에 지친 소시민들에겐 유일한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고 길거리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노숙인들에겐 40년 만의 한파와 코로나로부터 혹독한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생존의 공간을 의미하는 고마운 존재란 걸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이제 봄이 멀지 않았네요. 포근한 봄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겨우내 고맙게 머물렀던 각자의 텐트에서 훌훌 털고 나와 푸른 하늘을 향해 크게 기지개 한 번 켠 다음, 세상을 향해 몸도 마음도 가볍게 나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 이지혜 체칠리아(CPBC 가톨릭평화방송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