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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빗의 아내 안나가 고난을 대하는 자세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2-11 13:52:45 조회수 : 720

내게 고난이 닥치면 우린 가장 먼저 욥을 떠올립니다. 불행은 내 잘못이 아냐, 고통도 나의 탓이 아냐, 난 최선을 다했어. 욥은 사탄의 도발로 고난에 당첨됩니다. 그러니 자신의 고난이 억울하고 원망스러울밖에요. 때맞춰 나타난 잘난 척하는 지인들 때문에 비참함만 배가 되고요. 그래도 욥의 이야기는 고난을 버티게 하는 의지가 됩니다. 이것만 넘기면 돼, 그럼 괜찮아질 거야, 이런 기대가 고통을 인내하게 하니까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욥은 인내 끝에 잃었던 재산과 자녀를 새로 얻지만, 이미 죽은 자녀가 되살아난 것도 아니고 믿었던 친구들의 속내도 알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고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럼 의인으로 소문난 토빗은? 토빗은 동족을 돌보다가 재산을 빼앗깁니다. 눈치껏 살지 못하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다가 가난해졌죠. 그런데 거기에 이유도 없이 시력마저 잃게 됩니다. 하느님 맙소사! 자타가 공인하는 의인에게 장님이라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토빗은 가난은 견딜 수 있어도 비루함은 견딜 수 없는 의인인데, 이제 남의 도움 없이는 일상이 불가능한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약자를 돌봤던 사람이 돌봄을 받는 약자가 되는 것, 이건 참 잔인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곤궁해진 토빗은 아내인 안나에게 친절하지 않았죠. 안나는 가족을 위해 주인들의 옷감을 짜는 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갔고, 그런 안나를 딱하게 여긴 주인들이 어느 날 그녀에게 품삯 외에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토빗은 안나가 그 새끼 염소를 훔친 게 아닐까 의심합니다. 이건 또 무슨 일? 토빗의 이런 터무니 없는 의심이 그동안 말없이 가족에게 헌신해 왔던 안나를 화나게 했습니다(토빗 2,13-14 참조). 결국 부부싸움 끝에 토빗은 “저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토빗 3,6)라고 기도합니다.

토빗의 이런 태도는 무엇이 진짜 의로움일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불우한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토빗은 의인이고, 자신이 불우한 사람이 됐을 때 남의 선의를 받는 토빗은 찌질한 사람인가요? 이 얼마나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입니까! 그에 비해 안나는 어려운 처지에 떨어졌을 때 겸허히 타인의 선의를 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는 그 상황에 감사할 일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받아야 할 때는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가질 일이죠. 지금의 이 고난이 지나고 나면 더 나은 ‘나’가 되어 있을 것이란 믿음,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무엇으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것이 인생 선배인 안나가 우리에게 건네는 삶의 지혜입니다. 


글 | 방영미 데레사(한국가톨릭 문화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