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섬이라 그런지 안개가 자주 낍니다. 제 기억에 2010년에는 유난히 안개가 많이 꼈습니다. 안개는 마치 저의 현실을 반영해주는 듯,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꽉 차서 침묵의 시간을 만들어줬습니다. 먼저 걸어간 이를 따르는 길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그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했습니다. 솔직히 오래 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주님, 당신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고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개 속을 걸으며 길의 끝을 보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나아갈 수 있는 한 발자국만큼은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 나아가면 다음 나아갈 한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마음속에서 “아, 이거구나!”라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저에게 요청이 되는 것은, 발 딛는 곳이 바로 길이라는 믿음과 앞으로 나아갈 다음 한 발자국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살다 보니 어느새 터전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발자국, 하루, 한 해가 지나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호미로 숱하게 검지를 찍을 만큼 밭에서 일하고도 저는 흙을 알아보는 데에 1년이나 걸렸습니다. 흙이 참으로 흙으로 보이는 순간부터 이전의 흙과 이후의 흙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아, 네가 흙이구나!” 그동안은 이용가치로 보는 흙이었다면, 이제 이 흙은 하느님의 자취가 숨 쉬는 그 흙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저를 아신다는 것을 알게 된 날처럼 행복했습니다. 저는 흙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서가는 이 없이 길을 갈 때는 그 길이 정말 외롭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그 길이 아닐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내딛는 한 걸음에도 가슴 졸였던 때가 있었지만 그 속에서 길이 있다는 확신을 얻으며, 그 어떤 막막함 속에서도 길을 걷게 됩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글 |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장상연합회 JPIC분과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