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고해성사에 함께하시나요? 아마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드리는 신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어릴 적 기억이나 신학생 때의 개인 체험이 있기 전까지의 기억을 돌아보더라도, 고해성사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시간’, ‘때가 되면 의무감 때문에 맞이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회개하는 마음으로 고해소에 들어가서 자비롭고 사랑 가득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진정 하느님과 화해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체험하게 됩니다.
제 경험을 통해 봤을 때, 고해성사를 자신의 잘못을 들춰보고 죄를 고백하는 성찰의 시간으로만 여기면 그 시간은 피하고 싶고 무거운 마음으로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고해성사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묵상하면 그 시간이 꼭 피하고만 싶은 시간이 아니라 진정 제 영혼이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과 가까워지는 은총의 시간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물론, 때로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그 자리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고해소 안에서도 저의 죄가 무엇인지 잘 모를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영혼이 하느님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기에 방황하면서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묵상해 보면 참으로 위안이 되고, 제 영혼의 시선에 상응하는 마음의 자세로 하느님 앞에서 진솔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때로는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할지라도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영혼은 하느님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의 마음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1독서, 복음), 또 교회 공동체가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귀 기울였던 것은(2독서)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자녀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의 영혼이 하느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 곁에 머물렀던 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시선을 두고 있는 영혼이며 하느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명 인간적 부족함은 있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의 지체를 이루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곳을 바라보며 옳고 정의로운 것을 찾고자 하고, 거룩함을 찾고자 하며, 생명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함께 빛의 길로 가까이 가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 김태완 바오로 신부(제1대리구 복음화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