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됩니까?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률은 1위인 반면, 우울증 치료율은 최하위권입니다. 국민의 25%가 살아가며 한 번 이상 정신과를 찾을 정도의 마음의 문제로 고통 받습니다. 그러나 정신과에 대한 편견 탓에,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정신과 약이 해롭다며 술에 기대 잠을 이루고, 마음을 달래려 합니다. 정신과 약 중에서 즉각적인 증상 개선을 위해서 사용하는 안정제나, 수면제가 의존성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복용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항우울제, 항정신병제, 항갈망제는 중독성 자체가 없고 부작용도 크지 않습니다. 제때 약을 먹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훨씬 해롭습니다.
마음의 병을 ‘믿음과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오해하는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영과 육’이 결합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영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하는 마음의 문제 또한 육의 영역, 곧 우리의 뇌가 균형이 깨지거나 기능이 약해지면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체의 다른 기관에 대한 치료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치료를 통해 뇌를 잘 관리해야 우리의 마음이 여기에 편안한 상태로 머물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의 문제가 육적인 영역만의 문제이고, ‘약’을 통해서만 해결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공의 시절 적절한 ‘약’의 처방을 통해 우울증, 불안증, 정신증이 단기간에 좋아지는 것을 보고 ‘약’을 맹신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를 보고 은사님은,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그 약을 먹게 하는 것 또한 의사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꾸짖으시며, 환자는 ‘약’이 아니라 ‘정성과 존중’으로 치유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에 관한 유머가 생각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한 할머니가 홍수가 나자 자신을 구하러 온 모든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고 기도만 하다 결국 죽은 다음, 왜 자신을 살려주시지 않았는지를 하느님께 따집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계속 도움의 손길을 내려줬지만 할머니가 거절해서 살려줄 수가 없었다고 답하셨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주시고 치유하십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무엇을 강요하거나 채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청과 공감’으로 함께 걸으며 마음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허락하신 육체의 치유를 회피하고 병을 키우는 것이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하종은 테오도시오
(카프성모병원 병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