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로 19년차 라디오 작가입니다. 작가로 입문할 당시 2년 정도 음악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걸 제외하면 지금까지 쭉 시사프로그램 작가로 살고 있지요. 사실 방송작가라는 꿈을 꾸기엔 현실적으로 늦어도 너무 늦은 30대 초반, 다른 방송국도 아닌 가톨릭평화방송이라면 주님께서 마음먹고 불러주시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가지고 매일 떼기도(?)를 바치며 3년을 준비했더랬지요. 덕분에 지금은 방송선교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 매일매일 그 파도를 이루는 작은 물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방송작가는 꽤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제가 쓴 글이 전파를 타고 누군가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가 때론 울컥하게, 때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차가운 현실조차 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거든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직업들이 그러하듯 방송작가 역시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피해갈 순 없습니다. 그나마 음악프로그램 작가였을 땐 혼자만의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러브레터를 쓰듯, 따뜻한 봄날의 기운을 원고에 담아냈다면, 시사프로그램 작가는 살을 에는 겨울바람과 함께 매일같이 전쟁터에 내몰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화제성이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고, 누구를 출연시키면 좋을지 후보군을 선정하고,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려가며 까이고 까인 뒤 겨우 한 명의 출연자를 확정, 정해진 시간 안에 어떤 질문을 던지면 좋을지 숱한 고민 끝에 그 결과물을 한 장의 원고에 담는 일은 어쩌면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와 같은 고된 작업의 반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아이러니한 건 근무환경이 자발적 가택연금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세상 속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정치와 사회, 경제를 넘나들며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들을 비롯해 세상 곳곳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숨은 보석과도 같은 사람들까지. 현실에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전화를 통해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나누는 일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런 호사를 거저 누릴 순 없겠지요? 굵직한 국정 현안이나 서민들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정책을 챙기는 사람들, 특히 권력의 중심부에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통과해야 하는 관문도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국회만 하더라도 의원실로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할라치면 처음 전화 받는 비서를 시작으로 일정담당 비서관, 의원에게 직보(直報)하는 보좌관을 거쳐 인터뷰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최소 두세 단계 이상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비록 전화를 통해서나마 참 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되는데요. 아주 가끔은 안하무인(眼下無人), 기고만장(気高万丈), 이런 낱말들이 절로 떠오르는 보좌진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하루를 살아가는 데 써야 할 모든 기운을 전화 한 통에 죄다 쏟아 부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믿는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방송작가라는 소명을 주시면서 든든한 맷집까지 함께 챙겨주시는 섬세함이란….
몇 해 전,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한 의원실로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 (상냥하게)“안녕하세요? OOO 의원실이죠?
의원님께 인터뷰를 좀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일정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보좌관) (다짜고짜)“의원님 일정 안 되십니다.”
작가) (다시 상냥하게)“아직 며칟날 인터뷰 일정을 확인해 달라, 말씀 안 드렸는데요.”
보좌관) (짜증나는 말투로)“일정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아세요.”
작가) (욱하는 성질을 죽이며)“보좌관님, 의원님 일정을 확인하신 다음 인터뷰가 가능하면 하시는거고 일정이 안 되면 못하시는 거죠.
그렇게 무턱대고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보좌관) (버럭 화를 내며)“아니, 내가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한 겁니까?”
작가) (해맑게)“아∼ 저요? 제가 모시는 하느님 믿고 당당한 건데요.”
보좌관) “…….”
다시 생각해 봐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전화기 너머 전해오는 그 보좌관의 당황스러움은 몇 해가 지나도 생생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나름 버티기 힘들다는 시사프로그램 계(界)에서 가톨릭평화방송 작가로 20여 년 가까운 세월을 당당하게 버텨올 수 있었던 건 “그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루카 3,16) 나에게 직접 방송 선교 사명의 띠를 매어 주시고 그렇게 “의로움으로 나를 부르시고 내 손을 붙잡아 주시며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이사 42,4-6) 자상하게 돌봐주시는 그 분이 계시기 때문임을, 그 보좌관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하하하.
2022년 임인년 새해, 여러분은 뭘 믿고 올 한 해를 당당하게 살아보시렵니까?
글 | 이지혜 세실리아(CPBC 가톨릭평화방송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