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준비는 ‘모든 이’를 향한 구원의 ‘차별 없는 포용’을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은 아예 혼잣말로라도 꺼내지 마라”(루카 3,8).
그 시절, 이방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로 각인된 이스라엘 선민의식의 기원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는 그들이 한때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방인들’ 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큰 민족’의 시조가 된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고(창세 12,1-2), 하느님의 분부대로 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갔으며, 야곱은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큰 세력의 민족이 되었습니다(탈출 1,1-7).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한 뒤에 40년 동안 떠돌다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영광스러운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한편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또한 이집트에서 난민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형제로 대하며 차별 없이 포용해야 할 이유는 이처럼 ‘이민과 유배라는 힘든 시련이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역사의 근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4항] 참조).
이스라엘처럼 이민과 유배라는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우리 민족에게도 이주민들을 대하는 배타적인 정서는 여전히 극복해야할 문제로 보입니다. 국제결혼 이주자와 같이 법적으로 국민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이주민들에게는 다소 호의적인 정서를 갖지만, 법적 체류기간을 넘기고 체류하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들과, 난민 지위를 신청하였으나 인정을 받지 못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임시 체류하고 있는 ‘인도적 체류자’들에 대한 정서는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자국민이 우선이다.”라는 일부의 주장이 이주민들을 향한 적대적인 구호로 바뀌는 경향은 우려스럽습니다.
인권주일을 맞아 우리 사회에 이방인으로 소외된 이들은 없는지 되돌아봅시다. 이 세상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고 주님의 길을 곧게 내라는 이사야서의 외침,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외침입니다.
글 |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이주사목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