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혼란과 외침(外侵)의 와중에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초대 왕이 된 사울은 원래는 제사장들뿐 아니라 부모님께 순종하고 성실하며 겸손한 멋진 청년이었습니다. 용기, 애국심, 관대함까지 다 갖추었지요. 하지만 왕이 된 다음부터는 전쟁과 내분을 거치면서 성품이 조급해집니다. 제사장만 드리는 제사를 함부로 지내는가 하면, 자기를 내세우고자 기념비를 세우기도 합니다. 당연히 상황은 악화되어,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낮은 자존감으로 새 지도자 다윗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울증 환자가 됩니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질투는 오히려 자기를 파괴하는 내면의 악령이기 때문입니다.
선하고 멋진 리더가 승승가도를 걷다가 교만해지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충고에 눈과 귀를 닫고 추해지다가 고꾸라지는 모습은 자주 접하는 인생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마라.”는 조언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한다.”라는 속담도 있겠지요. ‘나는 달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리는 사람을 무섭게 변화시킵니다. 돈과 명예가 많고 높을수록, 진실함보다는 무언가 이용할 거리가 있을 거라는 계산만 앞세우는 소인들이 더 많이 꼬입니다. 어떡하든 이익을 챙기려는 아첨과 거짓된 이야기만 계속 듣다 보면 참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리더가 바보일수록 주변인들은 나쁜 짓을 더 쉽게 하고, 리더가 고립될수록 더 훌륭하고 정직한 인재들이 배제되니, 제 살길만 챙기는 것이지요. 시간이 그리 흐르다 보면 지도자들은 결국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거듭하다 세속적인 힘은 물론 영혼과 육신의 생명까지 잃게 되는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사울, 다윗, 삼손 같은 걸출한 지도자들의 일생이지요.
심리학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외면적 조건들이 워낙 좋다 보면 자아가 풍선처럼 팽창되어(ego inflation), 자신에 대한 비현실적인 과대평가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바람이 빠지거나 빵 터져 버리는 결과에 대해서는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자기 그릇에 비해 감투가 너무 크다 보면 퇴행하고 있는 내면을 부정하기 위해 스스로를 왕, 지도자, 현자, 심지어는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합니다. 한 번 명예로운 직역에 종사하게 되면 사람들이 영원히 자신을 그 직역으로 대우해 주길 바라기도 합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persona)에 매달리는 것이지요. 어딜 가든 그 껍질을 쓰고 대접을 받겠다는 태도는 사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이라는 뜻과도 같고, 가면 뒤의 얼굴을 숨기고 싶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젊을 때 부자도 되고 싶고, 명예도 얻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가 성공 그 자체에서 멈춘다면 성공 이후에 사울과 같이 외롭고 힘든 삶을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떤 자리도 영원하지는 않으니까요. 무슨 일을 하건, “나”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서 사울을 반면교사로 삼아 돈과 명예가 품고 있는 독과 병증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글 |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 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