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달력은 대림 시기부터 새해를 시작합니다. 새해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성탄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성탄을 준비하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냅니다. 작년 성탄은 참으로 암울했습니다. 성탄 미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홀로 태어나셨습니다. 무척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태어난 아기의 눈에는 온통 마스크를 쓰고 내려다보는 사람들뿐이었을 테고, 말을 걸어주는 이도 없었을 터입니다. 세상은 냉랭하고 사람들은 지쳐있었습니다. 구유를 찾아주는 몇몇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 눈에는 그나마 고맙게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환호와 경배가 없고 기쁨과 설렘이 사라진 정말 초라한 성탄절, 이런 재미없는 성탄이 앞으로 또 올까요?
신자들이 없는 초라한 성탄절이 저에게 가져다준 선물이 있습니다. 그동안 구유는 신나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추운 곳에 혼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연민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인간이 쳐다봐주지 않는다고 무엇 하나 아쉬울 분은 아니지만 괜한 송구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습니다. 미사 때마다 제대 앞에 꾸며진 구유를 향해 인사드리곤 했었는데 미사도, 신자들도 없다 보니 ‘경비병’ 같은 사명감이 용솟음쳤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몇 번 더 구유를 찾아 인사드렸습니다. 여기 누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하며 아기 예수님의 눈빛을 혼자 멍하니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말씀을 건네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 전염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세상에 나도 함께 있겠다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많은 위안이 됐습니다. 마스크 쓰고 계신 예수님을 상상하며 ‘정말 임마누엘 하느님이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보라, 그 날이 온다”(예레 33,14). 올해도 성탄은 찾아옵니다. 대림환의 첫째 초에 불이 붙었습니다. 어두운 빛깔에서 밝은 빛깔 초로 불은 점차 옮겨붙습니다.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도 점점 밝아져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1테살 3,13).라고 말을 건네시며 대림절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1테살 4,1)를 잘 알고는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루카 21,34) 많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초가 켜질 때 즈음이 되면 단단하고 강한 마음을 소유하게 될까요?
작년보다는 훨씬 기쁜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작년에 못했으니 올해는 두 배로 멋진 성탄절을 즐겨야지!’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낸 많은 성탄절이 너무 화려했던 것은 아닐까 되돌아봅니다. 내게 더 많은 감동을 선사해주신 예수님은 코로나 시대의 예수님이십니다.
글 | 심재형 예로니모 신부(성직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