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나자렛 예수, 유다인들의 왕”(INRI,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이라는 문구가 달려있습니다. 십자가형을 집행하면서 ‘유다인들의 왕이라고 스스로 우기는 자’라는 조롱의 말투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빌라도가 묻습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 18,33).
오늘은 교회 달력으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달력 끝에, 시간의 끝에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기념하는 것은 시간의 지배자이시자 인생의 마지막에 꼭 만나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고자 함은 아닐까요? 인생의 주인은 나지만, 나의 주인은 그분이십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묵시 1,8). 그리스말 알파벳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입니다. 시간의 처음도, 마지막도 전능하신 하느님의 소관입니다. 우리는 다만 두 알파벳 사이의 한 점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알파를 알고, 오메가를 이해한 것처럼 요란을 떨며 스스로 바벨탑을 쌓습니다. “영원한 통치”(다니 7,14)란 말은 단 한 분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래서 처음과 마지막은 늘 커다란 종교 주제가 됩니다. 그것을 알 수 없어 종교에 의탁하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은 시간의 ‘왕’ 이외에는 알지 못하고, 그것을 알고 계시는 분을 ‘왕’이라 부릅니다. 시간의 한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시간에 절대적으로 종속됩니다. 태어나면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종’이 됩니다. 시간의 종이자, 시간을 지배하는 자의 종입니다. 한계가 가져다주는 종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마태 10,24).
하지만 분명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있습니다. 그 시간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시간을 운용해 볼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마침내 시간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시간을 잘 운용하도록 처음부터 큰 빛물체 둘(해와 달)을 선사해주셨습니다(창세 1,16 참조).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왕’이 될 수 있는 특권도 지녔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예수님의 답은 이러합니다.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요한 18,34).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전해준 이유, 신부님, 수녀님, 주일학교 선생님이 전해준 이유와 더불어 나만의 이유 하나쯤 갖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글 | 심재형 예로니모 신부(성직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