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관 사무엘은 구약 시대의 중요 예언자 중 한 명입니다. 어머니 한나가 신전에서 기도 중 약속한 대로 젖을 떼자마자 사제인 엘리에게 의탁하여 예언자이자 판관으로 성장한 인물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물에 손을 대며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죽게 되고(1사무 2,11-24 참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하지만 사무엘도 판관이 된 이후에 아들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골치를 앓습니다. 이에 제대로 된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의견이 비등해지고, 때에 맞는 합당한 지도자를 택하라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울이 첫 번째 왕이 됩니다. (1사무 8,1-5 참고) 이런 과정 중에 판관 사무엘은 하느님과 직접적으로 만나며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었던 선택된 예언자로, 기도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특히 ‘하느님,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1사무 3,9 참고)라는 무한 수용의 태도를 보입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해달라며 요구하고, 나 혼자 힘들다 하소연하는 등, 하느님보다 나를 앞세우는 우리의 낡은 기도습관과 다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듣고, 작은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큰 하느님의 말씀에는 무한 복종하는 태도입니다.
유대교 전승에 의하면 사무엘은 영민하고 지혜로웠지만 동시에 자신과 가족, 측근들에게는 엄격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매우 따뜻한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교황님이 전 세계 위정자들에게 보여 주는 진정한 지도자의 원형적인 상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자신이나 가문, 지연 같은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묻는 태도는 지도자라면 누구나 가지려고 노력해야 할 덕목일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들어 올리고 부자들을 다시 내리시고, 들어 올린 자를 다시 내치시기도 할 수 있다’(1사무, 6-9 참고)는 사무엘의 경고는 세속적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요즘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까지 인생의 목표를 돈 벌고 유명해져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면서 삶의 보람과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시대니까요. 병들고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고 무시하는 이들, 다 커서까지 부자 부모덕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이 넘쳐납니다. 상위 부자가 부를 독식하고 대물림하는 전 지구적인 부조리한 상황 때문이겠지만,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고 젊은이들이 자포자기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힘없고 어리석은 부모를 보호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는 약간은 구식의 성공담, 피붙이가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타자를 위해 주었던 훌륭한 사람의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아쉬운 시대입니다. 품격과 배려와 비전을 몸소 실천하는 리더도 절실합니다. 사회가 이리 천박해진 큰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이른바 지식인이라고 하는 저 같은 사람들의 무책임과 무능함인가 싶어, 사무엘의 지혜와 족적에 대해 더욱 머리 숙여 조아리게 됩니다. 테크놀로지는 발달하는데, 우리 심성은 퇴화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글 |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 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