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목하고 있는 페루 삐뚜마르까 본당은 해발 3,500m 안데스산맥에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본당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도 선교 사제로 신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좋은 사목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첫 느낌은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뿐이었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몇 달째 제 마음 안에서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점점 제 몸과 마음은 이곳 신자들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산속 높은 곳에 있는 공소를 방문해 신자들을 만나고 성사를 집전하면서 ‘그래 나는 신자들을 사랑하고 잘 사는 선교 사제야. 선교 생활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네’ 하는 교만한 마음이 점점 제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느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정말 중요한 신앙인의 겸손을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19 팬데믹’이라는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고, 이 코로나는 이곳에서 저 자신의 밑바닥 한계를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만나던 신자들과 이곳 교구 신부님이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을 떠났고,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봉헌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성체를 모셔 드릴 때 손끝이 닿은 것조차 겁이 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병자성사를 집전할 때도 아픈 환자가 혹시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제 맘을 지배했습니다. 성유를 이마와 양손에 바를 때, 그리고 양손으로 아픈 신자의 머리에 축복의 기도를 할 때에도, 저는 인간적인 두려움에 손을 대기가 겁이 났습니다. 죽음을 앞둔 신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먼저 걱정하는 나약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다시 묻습니다. ‘나는 정말 선교지에서 신자들을 사랑하는 선교 사제인가?’
오늘 복음의 핵심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란 율법의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쉽게 듣고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의 깊이와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위대한 것인지 묵상하게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이 먼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내려놓지 않으면 절대 체험할 수 없는 신앙의 가장 큰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우리 신앙의 가장 높은 완덕의 모습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향하고 있는 이 세상의 순례길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의미를 머리가 아닌 겸손한 마음 안에서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글 | 박경환 바오로 신부(페루 선교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