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상의원의 전문과목 진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1987년 여름, 정신과 전문의 진료가 필요하여 병원 동료이면서 신자인 유00 교수에게 전진상의원 의료봉사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분도 마침 신림시장 허름한 건물 2층에 선우경식 원장님이 설립한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를 막 시작하신 참이었는데, 제가 요셉의원에서 신경외과 환자를 봐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원장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병원은 행려환자들의 목욕시설, 식당, 진료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병원으로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런데 그 냄새나고 좁은 식당에서 선우경식 원장님은 봉사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계셨고, 저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 환한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내과전문의자격을 갖춘 선우경식 원장님은 부와 명예를 추구할 수 있는 삶이 보장되어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행려자들의 진료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선 병원을 김수환 추기경님의 도움으로 설립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원장님의 인품에 반해 그해 가을부터 격주로 수요일마다 전진상의원과 요셉의원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의료봉사를 해왔지만 요셉의원 환자들이 풍기는 독특한 냄새로 처음엔 저녁 식사도 힘들었고 진료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가 아파 걷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자세한 신경학적 검사 없이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처방하여 보냈는데 마침 그 주일 복음이 유명한 마태오 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너희가 이 가장 미소한 자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문득 며칠 전 그 환자의 역한 냄새와 오줌에 절은 바지를 벗기지 않고 대충 진료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다음 주, 다시 본 그 환자를 잘 진료하기 위해 양말과 바지를 벗긴 후 근력과 감각검사를 해 보았더니, 엉덩이 감각 검사도 필요해 보여 속옷까지 벗기고 척수 종양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때 정밀 척추 영상으로 종양을 확인하고 치료한 체험을 통해 요셉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제게 다가오는 예수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역한 냄새를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35년간 요셉의원에서 간질, 두통, 어지럼증, 중풍 후유증을 앓는 환자들과 목이나 허리 디스크,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진료해오고 있습니다.
글 | 고영초 가시미로(건국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자문교수)